① 열정의 프랙탈을 만들자

# 지난 16일 '골프 여왕' 박세리가 LPGA 통산 24승째를 거뒀다.

올해 나비스코 챔피언십을 제패하며 메이저 대회 최연소 우승 기록을 갈아치운 미국의 모건 프레셀을 따돌리면서였다.

같은 날 한국 양궁선수들은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세계양궁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 3개와 은메달 1개를 보태 대회 종합 1위를 차지했다.

# 이보다 1주일 전인 지난 9일엔 최경주가 PGA 투어 AT&T내셔널에서 우승을 일궈냈다.

현지 워싱턴 타임스는 "5주 전 잭 니클로스가 주최한 메모리얼 토너먼트에서 승리한 최경주가 타이거 우즈가 주최한 대회마저 석권함으로써 가장 독보적인 선수로 자신을 아로새겼다"고 평가했다.

같은 날 일본의 심장부 도쿄에서 열린 제20회 후지쓰배 결승전은 한국 기사들의 잔치였다.

박영훈 9단이 이창호 9단을 한집반 차이로 이겨 2004년에 이어 두 번째 우승컵을 차지한 것.

# 프로게이머 이성덕은 지난 5일부터 8일까지 프랑스 파리 엑스포공원 전시장에서 펼쳐진 '일렉트로닉 스포츠 월드컵 2007(ESWC 2007)'에 출전,'워크3' 종목의 우승을 거머쥐었다.


지난 보름 사이에 일어났던 이 모든 일들을 우연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우연이라면 정말로 기막힌 우연이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이 이런 종류의 '세계 1위'를 반기고 기뻐할 날은 앞으로도 무수히 남아 있다.

박세리를 제외하고도 현재 미국 LPGA 우승 경험을 가진 선수는 18명이나 된다.

박영훈은 이제 국제대회 3승을 거뒀지만 이창호 9단은 22회,이세돌 9단은 8회나 우승했다.

골프 양궁 바둑 게임과 같은 분야에서 한국이 세계 정상권을 유지하고 있는 비결은 뭘까.

대개 전문가들은 △성공에 대한 강한 욕구 △한국인 특유의 집중력 △해외지향적인 국민성 △높은 교육열 등을 든다.

만약 이런 상태가 앞으로도 지속된다면,또 다른 경쟁국들이 우리보다 더 좋은 조건을 갖추지 못한다면 우리나라의 독주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

이런 구조는 나뭇가지처럼 큰 가지로부터 작은 가지까지 끊임없이 비슷한 모양을 반복하는 '프랙탈적 구조'와 닮아있다.

다시 말해 박세리나 박영훈이 지니고 있는 '세계 1등의 조건'이 후진들에게도 똑같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여자골프선수들이 몇 안되는 지도자로 손꼽는 전현지 프로는 "만약 그렇지 않다면 박세리 이후의 LPGA 우승자 18명을 설명할 길이 없다"고 잘라말했다.

프랙탈(fractal)이란 한마디로 부분 구조가 전체 구조를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해안선 산맥 눈송이 나뭇잎 허파 구름 등의 모습처럼 확대를 할 때나 축소를 할 때나 늘 일정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을 설명하는 도구로 이용된다.

허파의 큰 가지(꽈리)는 작은 가지로 끝도 없이 갈라져나간다.

모든 형태의 가지는 자신보다 크거나 작은 가지와 항상 닮아있다.

송은영 과학칼럼니스트는 "허파가 이 같은 자기복제적인 구조를 갖게 된 이유는 적혈구로부터 최대한 많은 산소를 흡수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산소를 가장 효율적으로 얻기위해 표면적을 극대화하는 구조를 선택했다는 것.그래서 우리 허파의 모든 꽈리들을 펼쳐놓으면 테니스 코트를 덮고도 남는다.

프랙탈 이론은 굳이 과학의 영역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정진석 국민대 교수는 "인생이란 결국 선택이라는 프랙탈 구조의 연속이며 인간의 생각과 행동 역시 가치관에 의해 만들어지는 프랙탈 구조"라고 풀이했다.

이 같은 구조는 기업조직과 경제현상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우리나라가 식민지를 경험한 개발도상국들 중 가장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이유도 '열정과 성장의 프랙탈 구조'를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저히 계산이 나오지 않는 데도 경부고속도로와 포항제철 건설을 밀어붙였던 힘이 오늘날 전자 반도체 자동차 조선 강국으로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심화되는 경쟁 여건 속에서도 유독 우리나라의 자동차산업이 5사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나 조선산업이 세계 1위를 다투는 '빅3'에 의해 분할되고 있는 것도 프랙탈의 확장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한국경제가 성장을 멈추는 때는 바로 프랙탈의 자기복제가 끝나는 순간이다.

테니스 코트의 넓이로까지 가지를 확장할 수 있었던 허파의 역동성과 자기혁신이 멈추는 순간 우리 생명이 다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제 "우리나라가 한 단계 더 발전하려면 삼성이나 포스코 같은 기업이 10개는 더 있어야 한다"는 경제 전문가들의 얘기는 더욱 진중하게 나와야 한다.

더 이상 '프랙탈화'를 진전시키지 못하는 경제는 아무런 희망이 없다는 절박한 경고로 바뀌어야 한다.

'프랙탈 경제'의 출발은 의외로 간단하다.

'나부터-지금부터-작은 것부터 바꾸자'로 요약된다.

나머지는 프랙탈의 자기유사성과 복제능력에 맡겨두면 된다.

베이징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뉴욕에 태풍을 몰고 온다는 유명한 '카오스 이론'도,사실은 지금 이 순간 구상하는 누군가의 아이디어가 부서와 회사를 바꾸고,나아가 나라의 경쟁력과 인류의 삶을 바꾸는 '프랙탈 경제'로 치환될 수 있는 것이다.

◆특별취재팀=조일훈 산업부 차장대우(팀장) jih@hankyung.com

주용석 기획취재부 기자 hohoboy@hankyung.com

류시훈 기획취재부 기자 bada@hankyung.com

정 현 인턴기자(한양대 신문방송학과) opentaiji@naver.com

이승호 인턴기자(서울대 사회학과) _moonbird_@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