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네티즌의 힘으로 4년 전 20대 여성의 폭행 피해사건에 대해 경찰 재수사가 이뤄지고 가해자 자수까지 이끌어지는 일이 일어났다.

불특정 다수인 대중의 힘이 또다시 확인된 것이다.

해외에선 이 같은 대중의 지혜와 힘을 기업들이 사업에 활용하는 소위 '위키노믹스(wikinomics)'가 활발하다.

회사가 가진 지질 및 금광 관련 정보를 통째로 인터넷에 올리고 새 금맥을 정확하게 찾는 사람에게 거액의 현상금을 걸어 금 채굴 지점 선정의 정확도를 비약적으로 높인 캐나다 금 채굴 업체 사례나 일반인이 제작하는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가 브리태니커 사전의 정보량을 누른 일은 널리 알려져 있다.

▶한경 3월8,14일자 참조

'위키노믹스'가 국내에서도 등장하고 있다.

국사편찬위원회가 2005년 말부터 온라인에서 '조선왕조실록' 원문 및 번역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네티즌들의 오류 지적으로 인한 개정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

한 달 평균 200여건에 달하는 네티즌의 오류 지적이 있었다.

번역 오류가 수정된 건 지난 2월 말까지 1964건에 이르렀다.

당시까지 제기된 오류 2377건 중 83%에 해당하는 분량이다.

조선왕조실록이 워낙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만큼 단순 오자 지적에서부터 사람 이름을 엉뚱하게 풀이한 것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전문적인 수준까지 다양했다.

국사편찬위원회 임천환 위원은 "전공 학자에서부터 극작가,조상에 대해 알고 싶은 일반인까지 다양한 계층에서 실록에 대해 관심을 갖고 오류를 지적하고 있다"며 "시간에 쫓겨 급히 번역된 조선왕조실록의 많은 오류를 바로 잡기 위해 일부러 원문과 번역문을 공개했고 일반인들의 조언이 보다 좋은 번역본을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추진 중인 '천만상상 오아시스(www.seouloasis.net)'를 통한 시민 제안도 초기 형태의 위키노믹스라고 부를 만하다.

지난 12일까지 6개월간 모두 4701건이 접수됐다.

일회용 이벤트성 제안이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시민 불편을 해소해 주고,경제적 가치가 큰 아이디어들도 적지 않다.

버스 손잡이를 더블유(W)자 모양으로 만들어 출·퇴근 시간대 버스 안에서 동그란 손잡이를 두 명이 동시에 잡아야 하는 불편했던 상황이 개선된 게 대표적인 예다.

교통카드를 이용한 기부시스템 도입도 큰 호응을 얻었고 신호등의 남은 시간을 숫자로 표시하자는 등의 제안도 시범 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서울 각 지역 시립·국립 도서관 소장자료를 전산화하고 네트워크화하자는 도서관 네트워크 확대 계획도 30대 시민이 제안해 추진 중이다.

황금돼지해를 맞아 늘어난 임산부를 대해야 하는 산부인과에서도 산모들의 온라인 모임 활동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병원 서비스 개선에 나서고 있다.

인기를 끄는 산부인과 병원의 경우 병원 서비스의 친절도나 산모 대기시설의 인테리어 배치까지 병원 실수요자들의 의견을 반영해 개선해 나가고 있다.

이 밖에 수년 전부터 도입된 온라인 지식검색 서비스는 이미 자리잡은 지 오래고 각종 파일 공유 서비스도 저작권 위반 논란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지식 확산과 정보 공유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휴대폰이나 노트북 등 주요 정보기술(IT) 제품의 개발과 마케팅에 일반 소비자들의 의견이 적극적으로 반영되는 프로슈머 활동도 위키노믹스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서울시 홍보담당관 황보연 과장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제시한 아이디어 중 실현 가능성이 높고 일상생활에 도움이 되는 사안이 많다"며 "공공기관뿐 아니라 기업들도 이 같은 시스템을 도입하면 기대 이상으로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동욱/이호기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