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지가 10억원인 서울시내 한 아파트를 구입하게 된 김모씨.소유권 이전등기를 위해 3100만원어치 국민주택채권을 사야 하는 김씨는 부동산중개업자로부터 채권구입 대행 법무사를 소개받았다.

3100만원의 국민주택채권을 구입하는 비용은 채권발급 수수료 등을 포함해도 할인율을 적용해 300만원 정도.그러나 김씨가 70만원가량의 법무사 보수료를 제외하고 채권구입을 위해 실제 지불한 금액은 430여만원이었다.

정상 가격보다 무려 130만원(43%) 비싸게 산 것이다.

25일 법무사업계 등에 따르면 일반주택이나 아파트를 구입할 때 의무적으로 떠안아야 하는 국민주택채권 할인율을 이용해 법무사와 부동산중개업자들이 고객으로부터 상당한 부당이득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이 같은 불법관행은 부동산중개업자들이 법무사에게 수십만원씩의 리베이트를 요구하는 구조적인 먹이사슬도 한 요인인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더하고 있다.

현재 건설교통부에서 발행하는 국민주택채권(1종) 판매를 대행하고 있는 곳은 국민은행 우리은행 농협 등 3곳.이들은 매일 매도단가 및 수익률을 공시하고 있다.

이를 적용한 지난 24일 공식할인율(채권을 산 뒤 바로 팔 때 드는 할인비용)은 9.22%.즉 액면가 1000만원의 국민주택채권을 실제 구입할 때는 액면가의 9.22%에 해당하는 92만2000원만 지불하면 된다.

그러나 9%대인 이 할인율이 채권구입 대행업체(주로 사채권자)와 법무사를 경유해 고객이 실제로 살 때는 약 14%까지 치솟는다.

여기에는 구조적인 비리가 숨어 있다.

등기업무 수주경쟁이 치열하다는 점을 악용해 부동산중개업자들이 수십만원씩의 리베이트를 요구하고,법무사들은 이를 채권 할인율이라는 형태로 고객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서울 서초동의 한 법무사는 "10억원짜리 등기업무를 줄테니 100만원을 달라는 제의를 부동산중개업자로부터 받은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목동에서 영업 중인 한 법무사는 "할인율을 3~5% 덧붙이는 것은 업계에서 이젠 공식처럼 돼 있다"며 "평당으로 쳐서 1만~1만5000원씩의 할인료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심지어 할인율을 문의하는 고객에게 은행의 공식 할인율을 위조해 알려주는 법무사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이러한 국민주택채권 할인율을 둘러싼 부동산중개업자와 법무사 비리에 대한 단속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2003년 감사원의 지적으로 일시 수그러들었지만 부동산시장 위축으로 고질적인 병폐가 최근 다시 고개를 치켜든 것.당시 감사원은 "정상 할인비용 이외에 적어도 매년 992억원이 법무사시장으로 흘러들어갔을 것"이라는 추산을 내놓은 바 있다.

전문가들은 고객이 채권의 실제 구입금액을 확인할 수 있다면 이 같은 비리는 크게 줄일 수 있다고 조언한다.

지금은 대법원의 등기프로그램이나 국민주택채권 판매를 대행하는 3개 은행 사이트에 채권의 할인금액이 명시돼 있지 않다.

예를 들어 우리은행 인터넷 홈페이지상에서 채권매입내역조회란에 들어가 채권발행번호와 주민등록번호를 기입하면 채권발행금액(위의 예에서 3100만원)만 뜬다.

여기에 채권할인금액만 추가로 입력해도 법무사들이 할인율로 장난을 칠 수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