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폭파사건 주범 김현희씨 입 열까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진실위)가 1987년 일어난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사건에 대해 1년6개월 간의 조사를 거쳐 1일 중간 보고서를 발표했지만 정작 주범으로 지목된 김현희(金賢姬.44)씨와의 대면조사는 이뤄지지 못했다.

그가 국정원과 진실위의 줄기찬 면담 요청에 응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진실위는 국정원이 작년 10월 말 김씨의 주거지를 방문해 면담 필요성에 대해 설명한 것을 시작으로 김씨의 남편과 친척을 통하거나 성직자를 통한 신앙고백 형태 등으로 최근까지 10여차례나 면담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과거 호의적이었던 국정원이 현재는 달라져 KAL858기 폭파사건을 재조사하도록 결정한 것에 대해 강한 배신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진실위는 폭발 상황, 바레인에서의 행적 등 각종 의혹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는 그에 대한 조사가 필수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진실위는 "역사의 산증인으로 보호하고자 했던 안기부 입장이나, 같은 이유로 특별사면을 받은 김현희씨 입장을 고려할 때 지금 역사의 증인이 되어달라는 진실위의 요구에 김현희씨 측이 반발하는 것은 논리적으로나 도의적으로도 명분이 없다"고 강조했다.

진실위 안병욱 간사는 특히 "진실위가 법적 강제력을 갖고 있지는 않다"면서도 "만약 김현희씨가 계속 조사에 불응하면 국회에서 통과된 과거사법에 의해 세워진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재조사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조사에 불응하고 있는 김씨를 압박했다.

김씨가 세간에서 완전히 모습을 감춘 것은 2003년 말로 알려졌다.

당시 그는 KAL858기 폭파사건의 사건조작설을 담은 소설에 대한 명예훼손 소송이 제기돼 검찰 소환 대상에 오르내리고 마침 한 방송사가 자택과 친척집 등을 오가는 자신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자 잠적했다.

진실이 밝혀지는 것을 두려워 한 정부가 그를 빼돌렸다는 억측도 나돌았지만 이보다는 그가 신변에 대한 위협을 느끼고 다시 세상의 주목을 받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김씨는 비교적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사고 발생 3년 만인 1990년 3월 대법원에서 사형 선고가 확정된 김씨는 선고 보름만에 특별사면돼 풀려난 뒤 안보관련 외부 강연과 수기(手記) 출간 등 공개 활동을 마다하지 않았다.

물론 그는 사면된 뒤에도 국가안전기획부의 체계적인 관리를 받아왔다.

안기부는 김씨가 사면된 직후인 1990년 6월 결혼 문제를 포함해 김씨가 사회에 정착할 수 있는 방안을 담은 '김현희 활용 및 정착지원 마스터플랜'을 작성하기도 했다.

사면된 뒤 친척집에서 살던 김씨는 1997년 12월28일 자신의 신변 경호를 담당했던 전직 안기부 직원 정모씨와 결혼하면서 분가했고 이후 공개 활동을 전면 중단했다.

진실위는 이때부터 안기부의 보호로부터도 실질적으로 완전히 벗어났다고 밝히고 있다.

김씨는 이후 서울과 시댁이 있는 경북 일원을 오가며 생활하면서 2000년 아들, 2002년 딸을 각각 출산하는 등 비교적 안정적으로 사회에 적응해간 것으로 알려졌고 KAL기 폭파사건도 발생 10여년이 지나면서 점차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하지만 언론과 소설 등을 통해 KAL기 폭파사건에 대한 의혹이 다시 불거져나오고 진실위의 조사마저 진행되면서 그의 입에 다시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그가 수 년간의 은둔생활에서 벗어나 '역사의 증인'으로 모든 의혹들을 털고 갈 수 있을 지 주목된다.

(서울연합뉴스) 이정진 기자 transi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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