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당국은 물론, 온 국민의 가슴을 졸이게 했던 나이지리아에서의 한국인 근로자 피랍사건은 사건발생 41시간만에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렸다.

이번 피랍사건은 나이지리아 무장단체 요원들이 현지시간으로 6일 오후 11시30분에서 7일 오전 0시(한국시간 7일 오전 7시30분∼8시) 사이 한국인 근로자 14명이 잠을 자던 숙소를 습격하면서 시작됐다.

나이지리아 남부 니제르 델타지역을 주무대로 활동하는 35명 안팎의 무장단체 요원들이 야음을 틈타 하커트항 남부 코손채널의 늪지대에 있는 대우건설의 가스플랜트 현장 숙소를 습격한 것이다.

10대 가량의 고속보트에 나눠타고 현장에 접근한 이들은 총격과 함께 로켓포를 발사하며 잠자던 한국인 근로자 5명과 현지인 1명 등 6명을 납치해 사라졌다.

피랍된 근로자들은 무장세력의 급작스런 습격에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었다.

현장에는 피랍된 6명 외에도 한국인 근로자 9명 등 10여명이 잠을 자고 있었지만 급히 피신해 납치를 가까스로 모면할 수 있었다.

납치 과정에서 근로자들의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대우건설 소속 보트 6척이 파손되고 이들이 퇴각하는 과정에서 나이지리아 현지인 수 명이 다치거나 실종된 것으로 전해졌다.

피랍소식은 사건 발생 약 2시간 30분후인 7일 오전 10시5분께 현지 대우건설 관계자들에게 전파돼 우리 외교 당국에도 접수됐다.

이 소식은 7일 오후 우리 언론에도 전파됐지만 사건 발생 만 하루가 되도록 납치단체의 정체는 물론, 납치 목적, 피랍 한국인들의 소재 등은 한 마디로 오리무중이었다.

피랍소식이 전해지자 정부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외교부는 이규형 제2차관 주재로 국외테러대책본부를 가동하는 한편, 나이지리아 현지의 우리 대사관도 이기동 대사를 본부장으로 하는 대책본부를 설치했다.

또 주한 나이지리아 대사를 외교부로 불러 나이지리아 정부의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했다.

정부 차원에서도 7일 오후 3시 청와대에서 외교부와 국정원, 국방부, 경찰청 등 관계부처 국장급 인사들이 참석하는 대테러대책실무회의를 개최하고 대책을 숙의했다.

이런 와중에 7일 밤 현지 무장단체인 `니제르델타해방운동'(MEND)이 자신들의 소행이라며 피랍 한국인들의 석방조건으로 나이지리아 정부에 의해 반역혐의로 재판에 회부된 자신들의 지도자 무자히드 도쿠보-아사리의 석방을 내걸었다는 외신보도가 타전됐다.

안갯속에 가렸던 무장단체의 정체와 납치 이유가 처음으로 알려진 순간이다.

정부는 이 같은 보도의 진위 여부를 주목하면서도 무장단체가 공식적으로 대우건설이나 우리 현지 대사관 등을 통해 자신들의 소행이라는 점을 알려오지 않음에 따라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납치단체가 석방조건으로 구금된 자신들의 지도자 석방이라는 정치적 이유를 내세움으로써 사건이 장기화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됐다.

7일 밤에는 대우건설측의 나이지리아 현지 채널을 통해 피랍된 한국인 5명이 모두 무사하다는 사실도 처음으로 전해졌다.

또 올루예미 아데니지 나이지리아 외교장관은 이날 밤 반기문(潘基文) 외교통상부 장관과의 전화통화에서 나이지리아 당국이 "납치단체와 대화를 시작했다"는 새로운 소식을 알렸다.

사건 발생 만 하루가 지난 8일 오전에도 MEND와 `이조 유스 카운슬' 등 3∼4개의 무장단체가 납치에 가담했다는 소식이 현지 언론을 통해 전달됐을 뿐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이날 오후 5∼6시께부터 납치단체들이 e-메일을 통해 한국시간으로 이날 밤 10시까지 납치된 한국인들을 모두 석방할 것이라고 알려왔다는 외신 보도가 전해지면서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오후 11시께 가진 브리핑에서 "이시각 현재 협상이 진행중"이라면서도 당초 10시께까지 석방될 예정이라는 외신보도에 대해서는 "확인작업을 벌이고 있지만 확인이 안 되고 있다"고 밝혀 상황은 여전히 불투명하게 전개되는 듯 했다.

그러나 외교부는 당초 이날 밤 11시 55분 인천공항을 통해 나이지리아 현지로 떠날 예정이던 정부 현지대책반의 출국을 갑자기 미뤄 협상 타결 가능성이 큰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았다.

8일 자정을 갓 넘긴 시간에 나이지리아 리버스 주정부와 무장단체간의 협상이 잘 타결돼 피랍 한국인들이 석방됐다는 소식이 긴급히 전해졌다.

석방 예정시간으로 알려전 오후 10시가 넘어도 석방소식이 없자 안타까워 하던 가족들의 천금같이 무거웠던 마음이 환한 미소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이준규(李俊揆) 외교통상부 재외동포영사국장은 9일 "나이지리아에서 납치된 5명의 한국인 근로자들은 8일 오후 23시 15분경에 석방돼 나이지리아 주정부측에 신병이 인도됐다"며 석방 소식을 공식 확인했다.

그러나 납치단체의 납치 목적과 나이지리아 주정부 및 납치단체가 피랍 한국인들의 석방을 조건으로 어떤 합의를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이귀원 기자 lkw777@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