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위 제약업체인 미국 머크사의 연구개발을 총 지휘하고 있는 재미교포 과학자 피터 김 연구총괄 사장(한국명 김성배·48)이 회사 연구 문화를 혁신시키고 있는 주역으로 해외 언론에 크게 소개됐다.

월스트리트저널은 7일(현지시간) 재미 교포 2세인 김 사장이 연구 총괄책임자로 임명된 2003년 이후 폐쇄적인 머크의 연구 분위기에 일대 변화를 일으키면서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김 사장의 혁신은 닫혀 있던 회사 연구 문호를 과감히 개방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김 사장은 한때 최고를 자랑하면서 외부에 오만하게까지 비쳐졌던 머크 연구자들에게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잇따라 외부 우수 과학자를 영입했다.

또한 과거 소극적이던 외부 기업과의 제휴에도 적극 나서 1999년 10건에 그쳤던 제휴 건수를 취임 후 3년 동안 무려 141건으로 늘렸다.

김 사장은 이 과정에서 머크 연구진의 오만한 분위기를 바꿔놨으며 자신이 직접 나서 가능성이 없어 보이던 제휴를 성사시키기도 했다고 저널은 전했다.

김 사장의 설득으로 머크와 제휴를 한 스위스 제약업체 액텔리온의 장 폴 클로젤 최고경영자(CEO)는 "김 박사가 제휴 협상을 위해 직접 스위스로 찾아왔다"면서 "머크의 연구책임자를 본 것이 그때가 처음이었으며 만약 그의 이런 정성이 없었다면 머크와 제휴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사장은 이런 연구 혁신의 배경에 대해 "취임 당시 머크는 뛰어난 기술과 과학자들을 보유하고 있었다"며 "하지만 나는 몇몇 분야에서는 외부에 더 훌륭한 과학자들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물론 반발도 있었다.

김 사장이 머크에 합류하기 전 주로 학계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신약 개발 경험은 물론 1만명에 이르는 대규모 연구인력을 관리해 본 경험도 없었다는 점을 들어 일부 연구자들이 거부감을 보였다.

몇몇 인사는 회사를 떠났다.

하지만 변화를 위한 김 사장의 시도는 계속돼 왔으며 그의 성공 여부는 머크의 미래를 바꿔놓을 수 있는 것은 물론 연구개발 경쟁력 유지에 힘쓰고 있는 제약업계의 바로미터로 작용할 것이라고 저널은 평가했다.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태생인 김 사장은 코넬대를 거쳐 스탠퍼드대에서 생화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88년부터 MIT 교수로 재직하다 2001년 머크에 들어와 2003년 연구총괄 책임자의 자리에 올랐다.

그를 일약 세계적 과학자로 떠오르게 한 것은 1997년 에이즈 바이러스의 인체 침투 메커니즘을 최초로 규명한 일이다.

그의 연구는 에이즈 백신 개발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외신에 대서특필됐고,이후 그는 유력한 노벨상 후보로 꾸준히 거론돼 왔다.

국내에서는 1998년 호암상을 수상했고 당시 상금 1억원 전액을 서울대에 장학금으로 기부했다.

장원락 기자 wr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