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불여악처(孝子不如惡妻).' 자녀들이 품을 떠날 때쯤이면 아내와 남편이 가족의 '전부'가 된다.

그래서일까.

젊은 부부 못지 않은 '닭살 커플'을 자처하는 중장년 부부가 늘고 있다.

'이혼증가율 세계 1위,지난 10년 새 60세 이후의 황혼이혼 5배 증가' 등 우리 사회 곳곳에서 혹독한 가정 해체 현상이 빚어지고 있지만 '기댈 곳은 배우자뿐'이라며 금실 다지기에 노력하는 부부들이 적지 않은 것.

21일은 열두 번째를 맞는 부부의 날.부부화만사성(夫婦和萬事成)의 길을 걷고 있는 이들을 통해 '우리 부부'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되돌아보자.

"오리야,나 왔어." 올해로 회갑을 맞는 이승한 삼성테스코 홈플러스 사장(60)은 퇴근 후 집에 들어서며 아내 엄정희씨를 이렇게 부른다.

신혼시절 아내가 사소한 말다툼 끝에 삐쳐 입술을 내미는 모습이 영락없는 오리를 닮아 붙인 애칭이다.

엄씨는 "나의 두목님,오셨어요"라며 반긴다.

이 사장의 톡톡 튀는 아내 사랑은 신세대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생일 결혼기념일 등을 챙기는 건 기본이다.

한 달에 한 번 아내에게 편지를 쓰는 건 수십년 된 일이다.

매년 한번씩 테마여행을 떠나고 월 2회 연극이나 연주회,미술품 관람도 빠뜨리지 않는다.

휴대폰 문자메시지로 하루에도 수십통씩 사랑의 글을 주고 받는다.

'오리''두목''보스'라는 암호 같은 애칭과 함께.

김준기 결혼지능연구소장(신경정신과 전문의)은 "뇌 속 깊은 곳에는 신체리듬을 조절하는 '기저핵'이란 게 있다"며 "나이가 지긋한 부부가 애칭으로 서로를 부르게 되면 뇌의 화학반응을 일으켜 긍정적인 감정들이 생겨나 젊고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말했다.

김주현 현대경제연구원장(53)과 아내인 원영희 성균관대 번역대학원 교수는 '이중생활'이 몸에 익었다.

서로 바빠 오붓한 저녁식사는 예전에 포기했다.

그렇다고 부부 사이가 서먹한 맞벌이 부부는 결코 아니다.

비결은 이중생활.새벽과 밤 12시 이후 심야에 은밀한 데이트를 즐긴다.

장소는 집과 심야영화관.

김 원장은 "세 아들을 키우면서 학교에 다니는 아내와 시간을 맞춘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며 "그래서 낸 묘책이 심야영화 보기와 새벽 예배"라고 귀띔했다.

얼마 전에는 오전 1시에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내 영화관에서 '음란서생'을 봤다.

주 1회 영화관람일을 제외하곤 오전 6시에 온가족이 일어나 가정예배와 함께 대화의 시간을 갖는다.

김미라 숙명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대부분 부부들은 자녀를 낳고부터 알게 모르게 사이가 멀어진다"며 "특히 황혼이혼이 늘어나고 있는 요즘 김 원장 부부처럼 젊은 시절의 열정을 갖고 없는 시간을 만들어 부부만의 짬을 내는 게 인생 후반부를 아름답게 보내는 지름길"이라고 충고했다.

정영권 스타벅스코리아 상무(47)는 최근 아내와 함께 서울 대학로 자유극장을 찾았다.

추억의 뮤지컬인 '달고나'를 보기 위해서였다.

연애시절 대표적인 데이트 장소였던 이곳을 요즘 아내와 한 달에 한 번 이상 찾는다.

이 밖에도 자주 찾던 찻집과 영화관,콘서트장,남이섬 등도 주말의 단골 데이트 코스다.

조용경 포스코건설 부사장(55)은 주말마다 부인 오선희씨(53)와 함께 '사진촬영 데이트'를 즐긴다.

야생화 촬영에 재미를 붙여 전국의 산과 섬,강을 돌아다니며 '이심전심'의 부부애를 다지는 것.지난달 10~14일에는 서울 서초동의 아파트 모델하우스에서 '꽃과 사람'을 주제로 부부의 작품을 전시하는 사진전도 열었다.

김동민 기자 gmkd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