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ㆍ기아차 계열사인 글로비스 이주은 대표가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해 모(母) 회사에 전달하고 일부 횡령한 혐의로 구속됨에 따라 기업인의 비자금 범죄에 대한 법원의 판단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법원은 비자금 조성 행위가 정상적 절차에 따라서는 지출이 불가능한 비용을 집행하기 위해 위법한 목적으로 이뤄지는 불법행위라고 판단해 엄벌하는 추세이고 각급 법원은 화이트칼라 범죄의 처벌 기준을 마련해 엄격히 적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비자금이 정상적인 목적대로 사용됐거나 회사 법인을 위해 조성한 것이 아니라는 게 밝혀지면 법원은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재물을 임의로 처분하는 `불법영득'의 의사가 있다고 보고 업무상 횡령죄로 처벌하기도 한다. 비자금의 사용처에 따라 뇌물수수나 배임수ㆍ증재 등 혐의가 적용돼 형량이 크게 늘어나는 사례도 있다. 대법원은 이달 9일 용역업체로부터 금품을 받고 법인카드로 비자금을 조성해 국회의원 출마를 위한 지역구 활동 등 개인 용도로 쓴 윤영호 전 한국마사회장에게 뇌물죄와 업무상 횡령죄 등을 적용해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서울중앙지법은 2004년 7월 하청업체에 공사비를 과다 지급한 뒤 차액을 돌려받는 수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해 횡령하고 법인세를 포탈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임승남 당시 롯데건설 사장에게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롯데건설의 자금을 회사의 정식 회계와 별도로 재건축 조합 간부 등에 대한 로비자금 및 롯데그룹 차원의 불법적 정치자금 등 비정상적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보관하던 중 임의 사용해 횡령한 점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서울고법은 분식회계와 사기대출 등의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이 선고된 전윤수 성원건설 회장에게 항소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200시간의 사회봉사명령을 내렸다. 당시 재판부(이재환 부장판사)는 공적자금이 투입된 회사에서 자금을 횡령한 죄질이 나쁘다며 `징벌적 메시지'를 주기 위해 대기업 회장에게 이례적으로 200시간의 사회봉사명령을 내려 눈길을 끌었다. 지난해 7월 분식회계를 통해 거액의 지급보증을 받아 금융기관을 부실화시키고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은 서울고법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반면 회삿돈 286억원을 개인 용도로 쓰고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하고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의 선처를 받은 두산그룹 전 회장 박용오ㆍ박용성씨의 경우 `솜방망이 처벌' 논란에 휩싸였다. 선고 이후 형량이 너무 가벼운 점 등을 문제삼아 재판 결과를 비판하는 여론이 비등했고 이용훈 대법원장도 같은 취지로 발언한 게 공개됐고 이를 계기로 각급 법원이 `화이트칼라 범죄' 처벌 기준을 논의했다. 이 사건은 현재 항소심에 계류 중이다. 민사소송에서도 비자금 조성 행위는 회사에 막대한 손실을 끼친 데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서울중앙지법은 올 1월 파산한 동아건설측이 최원석 전 회장 등을 상대로 낸 손배 소송에서 "경영진에게 사용 용도가 완전히 위임돼 회계장부에 기재하지 않는 부외자금(簿外資金)과 불법적으로 조성되는 비자금은 성격이 다르다"는 피고측 주장을 배척하고 당시 경영진의 부외자금은 비자금이므로 손해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서울=연합뉴스) 임주영 기자 z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