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경제학자가 그렇듯이 나에게도 한국경제의 선진화 전략에 대해 나름대로 이론이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 선진화 전략'(박세일 지음,21세기북스)의 폭넓으면서도 균형 잡히고 치밀한 대안 제시에는 완전히 나가떨어졌다.


최근 노무현 대통령이 최고라고 칭찬한 보고서에 '사회안전망을 갖춘 지식-혁신 강국'이란 비전 제시와 앞뒤 틀을 잡아주는 작업을 마치고 이만하면 됐다 생각하고,학회 참석 차 미국으로 떠난 비행기 속에서 이 원고를 통독하였기에 그 충격은 더욱 컸다.


기존의 선진국 전략서에 비해 이 책의 차별성은 이런 저런 정책들을 나열하는 정책 제안서가 아니고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를 넘나드는 통찰과 사유에 기초해 대안을 제시한 '정책 철학서'라는 점이다.


이 책이 제시하는 선진화의 철학은 개인주의적 자유주의와 전체주의적 권위주위라는 양극단을 넘어서는 공동체 자유주의다.


공동체의 발전과 개인의 자유를 조화시키되 전체를 위해 개인의 희생은 반대한다.


또한 부민덕국,즉 부유한 국민이 사는 덕 있는 나라를 만드는 선진화를 방해하는 5대 사상으로 신좌파 역사관,결과 평등주의,집단주의,반 법치주의,포퓰리즘을 꼽고 사례를 들어 비판한다.


이 책은 5대 선진화 전략의 첫째로 교육과 문화의 선진화를 내걸고 교육 시장의 개방·자율과 동시에 교육안전망이 필요하다는 점을 공동체 자유주의로부터 일관되게 도출한다.


또 교육이 성장을 위한 필수이자 동시에 분배개선의 최선 수단임을 지적한다.


고용을 중시하는 것은 대통령 보고서와 마찬가지인데,필자를 탄복케 하는 것은 복지 중심의 소극적 사회안전망보다 적극적이고 효과적인 '교육·일자리·복지'로 구성되는 삼각안전망 개념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점이다.


이 책은 개방,재벌,비정규직 등 모든 한국사회 현안에 대해 대안을 제시하고 포퓰리즘을 극복하기 위한 비례대표제 등 정치체제도 다루며 북한 및 통일 외교에 대해서도 균형감과 현실감을 가진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다른 정책서와 달리 이를 실현하기 위한 실천세력 양성까지 논하고 있으나,현실정치 및 정책논의의 수준이 이 책의 이상과는 한참 거리가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


440쪽,1만8000원. 이근 서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