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점심시간을 맞은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요리 아카데미 '라퀴진'.한 무리의 넥타이 부대 남성들로 요리 실습실은 시끌벅적하기 그지없다.


정오를 이미 30분쯤 넘긴 시간이지만 이들은 식사하러 가는 대신 앞치마를 두르고 프라이팬과 씨름하고 있다.


한 쪽에서는 호박을 찌는가 하면 프라이팬에 풀어놓은 계란을 부치는 손길이 분주하다.


믹서기를 작동할 줄 몰라 머리를 맞대고 빙 둘러선 모습은 사뭇 회의를 여는 것처럼 진지하다.


이 곳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요리를 배우는 직장인 남성들을 위한 요리 클래스.맞벌이 부부와 독신남이 증가하고 주5일제가 자리잡아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요리에 관심을 갖는 남성들이 부쩍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바쁜 시간을 쪼개 요리를 배우기란 쉽지 않은 법.바쁜 업무 중 한 시간여 정도인 점심시간을 이용해 요리도 배우고 직접 만든 음식을 끼니로 때우는 강습이 인기를 얻고 있다.


이날의 메뉴는 '과일이 곁들여진 야채 샐러드'와 '단호박 수프',그리고 '버섯 오믈렛'.이탈리아식 브런치(brunch:아침 겸 점심으로 먹는 식사)로 휴일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남편이 손쉽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음식들이다.


먼저 요리 전문가가 레시피(요리법) 및 간단한 요리 이론을 설명하고 시범을 보인다.


그리고 이어지는 실습 시간.방금 전까지 굳은 얼굴로 메모해 가며 듣던 남성들의 표정이 한층 활기를 띤다.


살충제 홈매트 등 생활용품과 접착제를 판매하는 독일계 회사 헨켈그룹코리아의 박지원 기획부 부장(38)은 "서양 요리라고 해 왠지 두려움이 앞섰는데 해 보니 생각보다 쉽다"며 "아내에게 사랑받으려면 열심히 배워야 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결혼 8년차인 박 부장은 직장에 다니는 아내가 집안일까지 도맡아 하느라 늘 바쁘지만 할 줄 아는 것이 별로 없어 설거지를 도와주는 게 고작이었다고.그는 "직장 남성을 위한 요리 강습이 있다는 얘기를 아내에게 하자 '설마 가서 배우겠어'라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여 더욱 오기가 발동해 참가했다"며 "아내는 물론 아이들을 깜짝 놀라게 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수강생 김대현씨(35)도 "주중에는 애들 얼굴도 못 볼 만큼 바쁘고 주말에도 잠만 자니 좋은 남편이나 아빠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아직 미혼으로 부모님과 함께 산다는 이국록씨(35)는 미래의 아내를 위해 신랑 수업을 받고 있는 경우.이씨는 "왠지 요리는 남자 일이 아닌 것 같고 또 부모님과 함께 살다 보니 요리할 기회가 없었다"면서도 "앞으로 결혼해 아내가 바쁘면 직접 요리하려고 배우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10여명의 수강생들은 대부분 '생각보다 요리가 재미있다'는 반응이다.


할 엄두를 못 냈고 기회가 없었지만 해보니 어렵지 않다는 것 .'훌륭한 요리'로 가족들을 놀라게 하겠다는 기대감도 빼놓을 수 없는 동기였다.


한편 이 요리 강습은 프랑스 주방용품 회사인 테팔이 기자재를 협찬하고 기획한 교육과정으로 10명의 수강생 모집에 수십 명이 몰려 주최측을 놀라게 했다고.강사로 나선 신지연 요리연구가(38)는 "예전에는 가스레인지도 제대로 못 켜는 남성들이 상당수였는데 최근에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가사에 참여하려는 남성들이 크게 늘어났다"고 말했다.


그는 "결과물을 시식해 보고 칭찬하면 너무 좋아한다"며 "사랑받는 남편과 아빠들이 늘어가는 것 같아 덩달아 기분이 좋다"고 덧붙였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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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즐거운 Tip! >


◆초보자가 요리를 배울 만한 곳


△라퀴진(www.lacuisine.co.kr),(02)3444-5861~2 △르 꼬르동 블루(www.cordonbleu.co.kr), (02)719-6961~3 △수도요리학원(www.soodocooking.co.kr),(02)555-2884~5(강남) △현대백화점 문화센터(culture.e-hyundai.com),(02)3467-6682(무역센터),3145-3386(신촌) △롯데백화점 문화센터(culture.lotteshopping.com),(02)2143-7061~3(잠실),531-2100~3(강남) △신세계백화점 문화센터(culture.shinsegae.com),(02)310-1500(본점),3479-1500(강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