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질환이 위독한 상태인데도 적절한 치료를 하지 않은채 심지어 의무관 처방도 없이 약을 지어주기도 했던 구치소에 재소자의 병사(病死)에 대한 책임을 지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휴대폰 절도 혐의로 재작년 11월 28일 모 구치소에 구속수감된 박모씨는 평소폐질환을 앓고 있었지만 구치소측의 안일한 조치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했다. 수감될 경우 `재소자 건강규칙'에 따라 재소자의 키, 몸무게, 가슴둘레 등을 측정한 뒤 이를 기록해야 하나 교도관은 박씨에게 물어서 이를 기록했으며, 혈압도 측정만 한 채 기록조차 하지 않았다. 사흘후 동료 수용자의 요청으로 의무과 진료가 이뤄졌지만 하지가 가렵다는 박씨의 말에 피부과 질환에 대한 조치에 그쳤고, 12월 10일께 기침을 심하게 한다는주변의 말을 듣고서야 엑스레이 판독과 객담 검사를 실시했다. 검사가 이뤄지기 전인 12월 4-10일 박씨의 상태가 좋지 못한 것을 본 교도관들이 근무일지에 `박씨가 정신이상 증세를 보였다'고까지 쓰면서도 박씨에게 좀더 주의를 기울이거나 상부에 보고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데 소홀했던 것. 더욱이 박씨의 객담 검사가 도착하기 전인 12월 25일 기존 의무관이 퇴직한데다 후임자 역시 정식발령을 받은 2002년 2월24일까지 1∼2주에 한번 정도 구치소를 방문하는 수준이어서 인수인계가 미흡, 박씨의 몸상태를 제대로 파악하는데도 어려움이 있었다. 새 의무관이 정식부임하기 전인 1월4일에는 구치소 의무과 직원이 의무관 처방도 없이 박씨에게 피부약과 소화제, 관절약 등을 처방해 주기도 했다. 결국 박씨는 1월6일 대.소변을 제대로 가리지 못하는가 하면 식사도 거의 못할지경에 이르러 동료들의 요청으로 의무과로 이송됐다. 이송된 후에도 가래끓는 소리를 심하게 내고 폐질환에 따른 호흡부전으로 의식불명 상태에 빠지자 구치소측은 그제서야 박씨를 모 대학병원으로 후송했으나 결국3월24일 패혈증, 급성신부전 등 합병증으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박씨는 과거 건설현장이나 철공소에서 일하며 수년 동안 노숙자 생활을 하는 등수감 이전부터 폐질환을 앓고 있었지만 건강에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못해 몸상태가 좋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지법 민사합의18부(재판장 김용호 부장판사)는 28일 "교도관들은 박씨의 몸상태가 좋지 못함을 알고 있었음에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직원이 약을 처방하는 등 재소자 의료 문제를 소홀히 한 책임이 인정된다"며 "피고는 7천여만원을지급하라"고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박씨 역시 수감되기 전부터 폐질환이 있었고 몸상태가 나쁜데도 적극적으로 의사에게 증상을 알리지 않는 등 20%의 책임이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류지복 기자 jbry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