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이 정부 예산을 담보로 정쟁(政爭)을 일삼으면서 예산 심의가 법정 기일인 2일을 넘김에 따라 당장 국민연금급여와 실업급여 등의 집행에 차질이 생길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또 내년도 사업 계획을 연내에 모두 수립한 뒤 연초부터 자금 집행에 나서 더딘경기 회복을 가능한 빨리 앞당겨 보겠다는 정부 계획에도 차질이 불가피해 가뜩이나어려운 경제로 신음하는 서민들의 주름살이 더 깊어질 전망이다. 3일 관계 당국에 따르면 국회는 대통령 측근 비리 관련 특검법안 거부권 행사에대한 한나라당의 등원 거부로 사실상 마비 상태에 빠져 앞으로 정상화된다고 하드라도 예산 심의는 예산결산위원회와 예산안조정소위원회 등의 절차를 감안할 때 이달말까지 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실제로 지난 1989년 이후 지금까지 14번의 예산 심의 중 10번이 법정 기일을 넘겨 처리됐으며 지난 2000년과 2001년에는 12월27일이 돼서야 심의가 종료됐다. 국회 심의가 끝나도 정부 자체적으로 예산 공고와 예산 배정 계획을 세워 다시국무회의를 통과시켜야 하기 때문에 일선 기관까지 예산 배정이 끝나려면 해를 넘길공산이 크다는 분석이다. 그렇게 되면 117조5천억원의 일반회계와 228조4천억원의 기금의 자급 집행이 당연히 정부 계획보다 늦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연금대상 140만명과 실업급여 대상 38만6천명 직격탄 정부내 각종 기금은 예산처럼 국회 심의를 거치도록 돼 있으나 심의가 늦어지면예산처럼 전년도 실적에 준해 자금을 집행하는 준예산제도가 없어 자금 집행 자체가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면 당장 내년 1월부터 국민연금기금에서 60세 이상으로 일정한 요건을 갖춘140만명에게 지급해야 할 연금급여와 고용보험기금에서 38만6천명에게 지급할 예정인 실업급여의 방출에도 차질이 빚어진다. 실업급여는 또 내년부터 일용근로자 21만9천명에도 지급하게 돼 있어 자금 집행이 지연되면 서민들의 어려움이 가장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고용보험기금은 실업급여 이외에도 실직자들을 위한 교육 훈련과 고용 능력 향상 지원 등의 사업도 시행하지 못하게 돼 최근의 경기 침체로 일자리를 잃은 실직자들의 고통은 더욱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기획예산처는 이 같은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올해 기금관리기본법에 준예산제도를 준용하는 방안을 국회에 제출해 놓았지만 역시 국회 마비 상태로 심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일반회계 예산에서도 최근 실업률이 7%를 웃돌아 사회문제화하고 있는 청년 실업 해소를 위한 청년 인턴과 현장 연수, 직업 훈련 등도 차질이 예상된다. 최악의 경우 국회의 예산 심의가 해를 넘기게 되면 준예산제도에 따라 법정 경비에 한해 올해 기준으로 지급되지만 유공자 보상금과 기초생활 생계비의 경우 내년부터 각각 5%와 3.5%를 올리려던 계획을 제 때에 실천에 옮기지 못하게 된다. ◆재정 집행 차질로 경기 회복 지연 우려 정부는 소비 심리가 꽁꽁 얼어 붙어 내수 침체가 좀처럼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자 내년의 예산 사업은 올 연말까지 계획을 철저하게 세워 놓고 내년 1월에 접어들자마자 곧바로 집행에 들어간다는 방침이다. 예년의 경우 정부 예산은 사업 계획 수립 등 각종 준비에 시간을 대부분 소진하는 바람에 1.4분기까지는 거의 집행되지 않았지만 내년에는 내수 경기가 워낙 악화됐기 때문에 1월부터 돈을 풀어 경기 진작에 기여하자는 복안이다. 소비 침체로 부진한 내수를 재정으로 보완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국회의 예산안 심의가 법정 기일을 넘겨 연말까지 지연될 가능성까지 엿보임에 따라 이러한 구상은 물거품이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도로, 철도, 공항, 항만, 주택 등 17조2천억원에 달하는 사회간접자본(SOC)시설 공사는 대부분 민간 기업들이 주도하기 때문에 발주와 자금 집행이 적기에 이뤄지지 않으면 경제에 미치는 타격이 커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예산 집행이 줄줄이 늦어지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도 5% 전망치에서 차질이생길 수밖에 없다. 아울러 어려운 경제 상황을 감안해 소폭의 적자 재정을 감수하고라도 경기 부추기기에 나서기로 하고 117조5천억원 규모의 내년 예산안에 3조원을 추가하려던 방안도 성사가 불투명해졌다. 정부 당국자는 "정치권이 전국민을 위해 사용되는 예산을 볼모로 정쟁을 일삼는구태는 이제 사라져야 한다"고 지적하고 "경기 회복이 더욱 늦어질 우려가 있다" 고경고했다. (서울=연합뉴스) 김대호기자 dae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