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비자금에 한정됐던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가 5대 기업 등으로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이번 수사를 계기로 한국형 `마니 폴리테'(깨끗한 손)의 전례가 탄생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검찰이 어느 때보다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대선자금 문제가 불거졌고, 정치권에서도 한국 정치의 고질인 `검은돈' 관행을 없애자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어 검찰 수사가 한국 정치사의 한 획을 긋는 마니 폴리테로 평가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마니 폴리테란 이탈리아어로 `깨끗한 손'이라는 뜻으로 지난 92년 이탈리아의 젊은 검사들을 주축으로 시작된 성역을 두지 않은 반부패추방운동을 말하며, 이제는 수사기관 주도로 이뤄지는 반부패 운동을 의미하는 일반명사처럼 사용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마니폴리테 캠페인을 주도한 사람은 밀라노 지방검찰청의 안토니오 디 피에트로 검사. 피에트로 검사를 주축으로 한 마니폴리테 캠페인은 92년 2월 사설 요양권의 계약을 따게 해주는 대가로 6천500달러를 받아챙긴 부동산 개발업자를 체포하면서 시작됐다. 검찰은 1년6개월간 계속된 캠페인을 통해 성역없는 수사로 현직 수상은 물론 150여명의 국회의원 등 3천여명의 유력 정치인과 기업인을 수사대상에 올렸고, 이중 1천400여명을 체포해 1천명 이상에 대해 법원의 유죄 판결을 받아내는 성과를 올렸다. 이 캠페인은 특히 40년 이상 기민-사회당의 우파 연립정당이 장기집권하면서 고착화된 부정부패 고리를 끊는 계기를 마련, 94년 총선에서 창당한 지 두달도 안된신당이 21%의 득표율을 기록하는 정치적 돌풍의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또 수사과정에서 정치권력이 수사기관에 역공을 가할 때마다 국민들의 대규모 항의시위와 언론의 반격으로 `사정혁명'을 전진시켜 검찰뿐만 아니라 국민과 언론등 전국가적 지지 하에 부패정치에 일침을 가한 운동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마니 폴리테는 이후 다른 국가에서도 사정기관의 부패정치 타파운동에 이 말이 등장할 만큼 일반명사화됐다. 대표적인 인물이 스페인의 발타사르 가르손 판사. 가르손 판사는 스페인 국민에게 피해를 준 사건의 경우 국적과 체류지에 관계업시 수사를 할 수 있다는 법률에 따라 지난 98년 칠레의 군사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에 대한 체포영장을 전격 발부하며 국제적 주목을 받았다. 이미 마약밀매, 고위공직자 비리 등 굵직한 사건을 도맡아 국내에서 명성을 쌓았던 가르손 판사는 99년에는 76-83년 아르헨티나 군사독재를 주도했던 98명에 대한 무더기 체포영장을 발부해 또다시 이목을 끌었다. 후안 구스만 판사는 칠레의 마니폴리테로 통한다. 스페인 가르손 판사의 피노체트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후 영국에서 체포된 피노체트 신병이 스페인이 아닌 본국 칠레로 송환되자 구스만 판사가 피노체트를 가택연금한 뒤 납치와 고문, 살인 등 혐의로 법정에 세운 것. 그러나 그의 이런 노력은 지난해 7월 칠레 대법원이 "피노체트의 치매증세가 재판을 받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에 이른 만큼 기소중지가 마땅하다"며 사실상 진실규명 및 처단없이 재판이 다소 힘없이 막을 내렸다. 검찰 수사가 정치개혁의 원동력이 된 사례는 일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도쿄지검 특수부는 지난 92년 유통기업 `사가와 규빈'이 기네마루 신자민당 부총재 등 정치인 10여명에게 21억5천만엔의 정치자금을 제공한 사실을 밝혀냈고, 이스캔들로 이듬해 탄생한 호소카와 총리를 수반으로 한 비자민 연립정권은 정치개혁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 94년 정치개혁 법안을 통과시키는 쾌거를 이룩했다. (서울=연합뉴스) 류지복 기자 jbry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