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체에 신제품을 대신 개발해 주는 사람이 있다. 경기도 안양의 김병만 KBM신소재개발연구원장(56)은 지난 30년 동안 3백여건의 화학분야 신제품을 개발한 화학 발명가다. 그는 기업체들로부터 기술개발 의뢰를 받으면 불가능 판정이 나오지 않는 한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근성으로 유명하다. 웬만한 국내 화학업체와 종사자들은 그의 이력을 익히 알고 있다. 상당수가 그의 힘을 빌려 제품을 개발하거나 공정을 개선하는 효과를 누리기도 했다. 그 동안 그가 발명한 제품은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다. 시중 문구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딱풀(제조사 아모스),중화제 없는 파마약(제조사 하얀비),자동차의 김서림 방지 필름(제조사 뉴택) 등은 이제 관련 분야에서 없어서는 안 될 정도로 인기품목이 됐다. 벽지 등에 사용하는 가루풀(제조사 KBM케미칼)도 그가 개발했고 식당 종업원들의 일손을 크게 덜어준 1회용 종이 물수건도 그의 히트 상품이다. 김 원장은 요즘 물에 녹는 필름에 몰두하고 있다. 연간 50억장이 넘게 사용되는 창봉투(주소부분에 필름을 붙여 읽을 수 있게 한 봉투)의 필름을 물에 녹게 하면 종이 재활용이 바로 가능하다는 데 착안했다. 미다스라는 회사의 요청을 받아 개발된 이 제품은 20도에 녹는 수입품과는 달리 40도에 녹도록 해 실용성이 뛰어나다고 그는 자랑한다. 중학교 담임선생님이 진학을 권유한 서울북공업고의 화공학과가 그림 그리는 곳인줄 알았다는 그는 사실 뒤늦게 기술용역에 빠지게 됐다. 서울대 농대 농화학과를 졸업한 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8년간 연구원 생활을 한 그는 85년 KBM 신소재개발연구원을 설립하면서 기술용역업에 본격 나서게 된다. 한 번 손에 대면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기질 때문인지 그는 업체들의 의뢰를 받아 히트 상품들을 본격적으로 내놓기 시작했다. "개발용역비는 착수시점에 50%를 받고 성공하면 나머지를 받고 있지요.어떤 경우는 개발용역비로 의뢰회사의 지분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최근 미다스의 기술개발연구원장까지 맡고 있는 그는 그 동안 중소기업체에 개발품을 거저 주기도 했고 사기를 당하기도 했다며 그러나 업체들이 잘 되는 것을 보면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고 했다. 두 아들 중 장남이 서울대 화학전공 박사과정을 밟으며 기술 2대를 잇고 있다. 김희영 기자 song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