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날'을 맞은 경찰은 피곤하기만 하다. 하루 평균 서울 시내에서만 200여건 안팎의 크고 작은 집회, 시위가 벌어지는 데다 최근에는 경기 불황으로 자살과 강력 범죄까지 늘고 있다. 묵묵하게 일하는 대다수 경찰관들은 이중고를 숙명처럼 받아들이며 `민중의 지팡이'로 자부하고 있지만, 이라크 파병 찬반 집회와 농민.노동자 시위가 잇따라 열릴 예정이어서 `피곤한 날'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경찰의 `피로 지수'는 통계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지난 1990대년초 잠시 줄어드는 듯 했던 경찰관 1인당 담당 인구는 97년 516명에서 99년 518명, 2000년 522명, 2001년 526명으로 조금씩 늘고 있다. 반면 전체 경찰 인력은 93년 9만108명에서 2001년 9만819명으로 제자리 걸음 수준이다. ◆강력범죄에 경호.시위 경비까지 = `사건 1번지' 서울 강남경찰서는 최근 잇따른 피살 사건에 방범 근무까지 강화돼 그야말로 진이 빠지는 상황이다. 지난달말 발생한 신사동 모 여대 명예교수 부부 살해 사건도 미궁 속인데 최근삼성동에서 60대 노인이 살해되는 사건이 터지자 초비상이 걸렸다. 신사동 사건에 강력 6개반 50여명의 형사가 매달려 있는 가운데 삼성동 사건까지 발생하자 강남서는 수사인력 배치에도 골머리를 앓고 있는 실정이다. 치안 수요도 만만치 않은 데 최근에는 경호. 시위 경비 업무까지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2월 한총련 대학생들에게 기습 점거를 당한 적이 있는 무역센터 내 주한미국상공회의소에는 강남서 방범순찰대 1개 중대가 상주하고 있다.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의 압구정동 자택 인근과 역삼동 이스라엘 대사관 경비도소홀히 할 수 없는 처지. 지난 17일 새벽에는 황장엽씨 문제로 경비 병력이 호출된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인사들의 삼성동 코엑스 방문은 근무자들의 주름살을 늘게 만들고 있다. 같은 날 코엑스에서 열린 대형 전시회에는 피살 사건을 수사 중이던 형사과 인력 20여명이 경비 근무에 동원됐다. 강남경찰서 관계자는 "잇따른 강력사건으로 주민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일부 단체들의 기습시위에 대비하느라 경력이 턱없이 부족해 피로가 누적되고있다"고 곤혹스러워 했다. ◆집회. 시위에 치안은 뒷전 = 국민의 정부들어 집회, 시위가 늘면서 올해는 9월말까지 전국에서 무려 8천666건의 집회, 시위가 열렸다. 지난해 동기 대비 횟수는 14%, 인원은 10% 늘었고 이에 따라 동원된 경찰도 13%증가했다. 이라크전 반전.파병반대 집회, 화물연대 파업,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차량투쟁, 철도노조 파업, 부안 원전시설 유치 반대 시위,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 등 굵직한 집회와 행사가 이어지면서 "경찰도 쉬고 싶다"는 하소연도 나왔다. 화물연대 파업, 부안 시위, 대구 U대회 때는 경비 경찰이 100% 동원됐다. 집회가 늘면서 그 과정에서 `맞고 터지는' 경찰도 늘고 있다.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집회.시위 과정에서 중.경상을 입은 경찰은 지난해 동기대비 96% 증가한 421명에 달한다. 특히 전.의경과 경찰관을 합쳐 지난해에는 4명에 불과했던 중상자가 올해는 27명이나 됐다. 불법.폭력시위 사범은 작년의 배에 가까운 3천481명으로 집계됐다. 직무상 위험도도 갈수록 높아져 지난 97년부터 지난해말까지 6년동안 순직 경찰관은 292명이었고 근무 중 다친 경찰관도 4천340명이나 됐다. 지난해에만 순직 경찰관은 39명이었고, 803명이 근무 중 각종 사고로 부상을 입었다. 하루 평균 2.2명꼴이다. 순직 원인의 60.9%는 과로, 31.5%는 교통 사고로 경찰이 처한 열악한 근무여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1년 내내 경력에 여유가 없다"며 "효율적 운영을 위해서는 30%의 경력은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1주일 내내 하루도 못 쉬고 있어 전.의경들의 불만이 높다"고 말했다. 경찰은 지난 19일부터 부안에 투입됐던 36개 중대 가운데 16개 중대를 각 지방으로 복귀시켰다. 이라크 파병반대 집회나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자살로 촉발된 노동계 투쟁 등각종 대형 시위가 예고돼 있어 경력 수요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집회, 시위 문화가 금방 고쳐지기는 힘들 것 같다"며 "시위에동원되는 인력만 줄여도 치안에 좀더 힘쓸 수 있을 것"이라고 한숨지었다. (서울=연합뉴스) 강훈상 이광철 정성호 기자 gcmoon@yna.co.kr sisyph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