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대선 직전 이회창 후보의 승리를 위해 북측에 총격을 요청했다는 이른바 '총풍' 사건은 당시 이 후보의 특보였던 한성기씨의 우발적인 발언에서 비롯된 것으로 최종 결론이 났다. 대법원은 26일 한씨, 오정은.장석중씨 등 이른바 '총풍' 3인방에 대한 상고심 선고공판에서 "세 사람이 중국 베이징에서 북측 인사를 접촉해 북한의 남한 대선에 관한 동향을 알아보기로 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북측에 무력시위를 요청키로 사전 모의했는지 여부에 충분한 증거가 없다"며 상고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비록 목적 달성은 못했지만 이를 모의하고 실행에 옮긴 자체만으로도 국가안보상 심각한 위협이며 선거제도에 대한 중대한 침해"라는 1심 재판부와 검찰의 판단을 배척하고 한씨의 독자적 판단에 따른 우발적 행동이라는 항소심 재판부의 손을 들어준 셈이 됐다. 북측에 대한 총격 요청이 한나라당의 대선 승리를 염두에 두고 사전에 계획된 것이냐 아니면 한씨의 우발적 언동에 따른 해프닝이었느냐를 놓고 1심 재판 당시부터 치열한 공방이 진행됐다. 검찰은 "증거에 따르면 이들 3명이 사전 모의를 통해 북측 인사를 만나 휴전선 등에서 무력시위를 해줄 것을 요청한 사실관계가 명백하다"고 주장한 반면, 변호인 측은 북측 인사를 접촉한 것은 사실이지만 총격 요청은 없었다"며 팽팽하게 맞섰다. 1심 재판부는 총격 요청에 앞서 이들 3인방의 사전 모의가 있었다는 검찰측 공소사실을 지지했지만 이에 반발한 변호인단이 항소심에서 총력전을 벌이면서 그야말로 '불꽃튀는' 공방이 벌어졌다. 변호인단은 특히 수사 단계에서 검찰이 `3인방'의 변호인 접견을 제한한 사실을 무기로 삼아 검찰을 코너에 몰아넣으면서 재작년 4월 "사전에 '총풍'을 모의했다는 검찰의 공소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이들 3명이 대선이 과열돼 분별력이 없는 상황에서 북측 관련 인사를 만나 대선 관련 동향을 알아보는 과정에서 한씨가 북측 인사에게 '도를 넘는' 요청을 한 것도 사실이지만 세 사람이 사전에 이를 모의한 사실은 없었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하지만 항소심 판결은 곧바로 검찰의 거센 반발을 불러 일으켰으며 결국 '총풍'사전모의 여부에 대한 최종 결론은 대법원의 몫으로 넘겨져 2년 이상 지루한 공방을 더 거쳐야 했다. 특히 검찰은 한나라당이 항소심 판결을 근거로 수사 관계자에 대한 문책을 요구하면서 정치 공세를 펼치자 이례적으로 공판담당 검사가 내부 통신망에 글을 올려판결 내용을 반박하는 글을 올리면서 한때 법원과 검찰이 갈등 조짐을 보이기도 했다. 이번 판결로 '총풍' 사전모의 여부에 대한 논란은 일단락됐지만 대선 동향 탐색을 빙자해 비밀리에 북측 인사를 접촉하고 이 과정에서 해프닝성이라고 해도 국기문란에 해당할 수 있는 무력시위를 요청한 한씨의 행동은 두고두고 논란거리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연합뉴스) 조계창 기자 phillif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