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 내부 직원이 고객정보를 유출하거나 고객 돈을 횡령하는 금융사고가 최근 빈발하고 있다. 특히 증권사 차장, 은행 지점장 등 간부들까지 범죄대열에 합류하고 있어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수준이다. 하지만 처벌은 솜방망이에 그쳐 범죄 예방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피해를 입은 시민들은 '금융기관도 믿지 못하면 도대체 누구를 믿으란 말인가'라며 하소연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잦은 금융사고는 사회 전반에 한탕주의 심리가 만연한데 따른 것"이라며 "일벌백계식 처벌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 '고양이에게 생선 맡긴 꼴' =지난 21일 모 증권사 차장인 나모씨(34)가 자신이 관리하던 고객 신용정보 2백87건을 빼내 사채업자 등과 공모, 거액의 예탁금 인출을 시도하다 경찰에 적발됐다. 경찰에 따르면 나씨는 주식투자 실패로 2억원 가량의 카드빚 등이 쌓여 신용불량자가 되자 평소 알고 지내던 사채업자 지씨로부터 '이득금의 10%를 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고객정보를 빼돌린 것으로 밝혀졌다. 고객의 돈을 무단으로 인출한 은행 지점장도 검찰에 구속됐다. 서울지검 동부지청은 지난 22일 거액을 대출받기로 한 고객이 부도위기에 몰리자 예정대로 대출을 성사시키기 위해 다른 고객의 예금을 무단 인출한 혐의(사기 등)로 전 J은행 K지점장 오모씨(48)를 구속했다. 또 은행 전산컴퓨터를 이용해 입ㆍ출금 및 수표 발행 등을 조작해 50여억원을 빼돌린 한 은행 지점장도 쇠고랑을 찼다. 서울지검 형사5부는 고객 명의를 도용해 전산등록되지 않은 30여억원어치의 자기앞수표를 발행하고 은행 전산컴퓨터를 이용해 입금되지도 않은 돈을 입금된 것처럼 속여 2억여원을 가로챈 혐의로 K은행 B지점장 라모씨(38)를 구속기소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광주농협 서방지점에서는 현금인출기를 관리하는 직원이 3억여원을 횡령한 사건도 발생했다. 또 지난 6월에는 진도 모 새마을금고 홍모 상무(40)가 가족이나 타인 명의 등으로 대출관련 전산을 조작하는 수법 등으로 3억5천여만원을 횡령한 뒤 잠적하는 사고도 터졌다. ◆ 대형화되는 금융사고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작년 한해 발생한 고객예금 횡령 등 금융사고 건수는 3백77건(3천7백37억원)으로 전년 3백97건(2천2백79억원)보다 건수는 20건 줄었으나 금액은 1천4백58억원 증가했다. 사고 유형은 횡령이나 유용이 1천5백83억원으로 전체 사고금액의 42%를 차지했다. 금융권별로는 은행권이 2천5백46억원(68%)으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증권 8백17억원(21.9%), 비은행권 2백78억원(7.4%), 보험 78억원(2.1%) 순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올해 통계는 아직 잡히지 않고 있으나 요즘 같은 추세대로라면 작년 수준을 뛰어넘고 사고 규모도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 내부통제시스템 강화 시급 =잦은 금융사고는 내부통제장치가 미흡하고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따라 제도적 보완장치와 윤리교육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천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IMF 이후 인력감축이 이뤄지면서 직원 상호간의 감시와 견제기능이 약화되고 사고가 발생해도 이미지 훼손을 우려해 쉬쉬하거나 고발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내부통제시스템을 강화하고 주식을 과다 투자하거나 빚이 많은 직원들에 대한 감찰과 윤리교육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주영 법무법인 한누리 변호사는 "내부통제장치 마련에 대한 금융회사의 투자 미흡이 주요 원인"이라며 "금융사고에 대해 엄청난 배상책임을 물리고 있는 미국처럼 우리나라도 처벌과 배상책임을 한층 엄격하게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위평량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국장도 "외환위기 이후 금융기관 구조조정 여파로 미래가 불안해지면서 한탕주의가 만연해 금융범죄로 이어지고 있다"며 "횡령금액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추징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해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후진ㆍ이태명 기자 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