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경 LG명예회장과의 인터뷰는 오전 11시반부터 2시반까지 세시간 가까이 계속됐다. 인터뷰가 길어진 덕에 점심까지 함께하는 행운도 뒤따랐다. 재벌 명예회장의 식탁은 얼마나 화려한지, 혹시 몸에 좋다는 별식을 남몰래 즐기는 것은 아닌지 자못 궁금했던 터였다. 식당은 구 명예회장의 2층짜리 숙소(연암축산원예대학 사택)의 1층에 있었다. 명예회장과 취재기자, 사진기자, 연암축산원예대학 관계자 세명 등 여섯명이 식탁에 둘러 앉았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상차림은 여느 중산층의 식단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새송이버섯 장조림과 돌김 무침, 당귀(한약재)조림, 상추와 고추, 된장찌개 등이 올라왔다. 여기에 막 구워낸 소갈비가 보태진 정도였다. -늘 이렇게 식사를 하십니까. "왜, 이상한 모양이지. 밥이라는게 그저 내 입에 맞는대로 잘 먹고 잘 소화시키면 되는 거 아닌가. (된장찌개에 숟가락을 가져가며) 한국 사람한테는 뭐니뭐니해도 된장찌개가 최고야. 안 그래. 기자 양반도 많이 들어요." 식단은 소채 위주의 한식이었지만 그래도 곁들여진 반주는 발레타인 17년짜리 양주였다. 마시는 방법이 특이했다. 술을 조그만 양주잔에 따른 뒤 뜨거운 물을 채운 보리찻잔에 다시 부었다. "양주는 찬물에 타 먹는 것보다 이렇게 마셔야 장에 따뜻하고 좋아." 이쯤에서 보신탕 얘기를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구 명예회장은 보신탕 마니아로 잘 알려졌기 때문이다. -요즈음도 보신탕을 즐기시나요. "일년에 서너번은 먹지." 그는 여름철이면 계열사 사장들을 한적한 계곡으로 불러 보신탕 파티를 열어주곤 했었으며 서울시내 보신탕집들은 그가 들렀다는 사실만으로 유명세를 탈 정도였다. 식당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은 한쪽 구석에 서있는 골드스타 (GOLD STAR) 상표의 에어컨이었다. 생산된지 20년도 넘어보였다. 골드스타는 LG전자의 초기 브랜드. 럭키금성에서 그룹이름을 LG로 바꾼 뒤 골드스타 브랜드도 사라졌다. -아니, 새 것도 많은데 왜 하필이면 옛날 제품을 갖다 놓으셨습니까. "LG전자 공장에서 만든 1호 제품들이야. 내가 죽으면 여기에 기념관을 만들어 저런 것들은 소장품으로 전시하거나 아니면 LG박물관으로 가져 가겠지만 그 때까지는 내가 쓰고 싶어서." 마침 TV에서는 골프레슨 프로가 방영되고 있었다. 요즘도 일주일에 한 번정도 필드에 나가서인지 관심이 많아 보였다. "맞어, 저 젊은이가 참 설명을 잘하더라구, 자 볼륨을 올려볼까. 음 그래. 러프에선 저렇게 짧게 찍어 치는거야." 뒤이어 연예계 복귀를 선언한 개그우먼 이영자씨가 TV 화면에 비치자 "이영자 맞지,언제 저렇게 날씬해졌어"라며 좌중을 둘러봤다. 다이어트에 관심을 보이면서도 구 명예회장은 어느새 반찬과 밥 한 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식사를 마치고 거실로 옮겨 커피를 마시며 인터뷰를 계속했다. 가족얘기부터 LG의 지분구조 정리 문제에 이르기까지 여러가지를 물어보았다. -가족들은 자주 들르나요. "안 사람은 이곳에 잘 안와. 별 수 없이 일요일 오후에 내가 올라가지. 가족끼리는 한달에 한번 호텔이나 음식점에서 모여 식사하는데 6월에는 제사다 약혼, 결혼이다 해서 일주일에 두번씩은 모인 것 같아." -손주들도 자주 만나십니까. "저희들이 오기도 하고, 내가 부르기도 하고 그래. 다들 잘하는 편이야. 일요일 같은 때 만나서 내가 젊었을 때 기업을 일구던 이야기도 해주고 그러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항상 조상들의 제사를 잘 모시고 어른들을 잘 공경하는 거야." 그는 증조부 만회공(晩悔公)이 조선말기 홍문관 교리(校理)를 지냈던 집안의 유교가풍 때문인지 집안 얘기를 할 때는 유난히 효(孝)를 강조했다. 아들과 며느리, 손주들의 촌수와 이름 등을 들어가며 집안 일에 대해서도 간략히 이야기해 주었다. -LG의 지분정리는 어떻게 되나요. "LG가 지주회사로 전환했는데 복잡한 지분구조를 정리하려면 앞으로 2,3년 더 걸릴거야. 전자, 화학, 금융은 구씨쪽이고 정유, 건설은 허씨쪽이지." -경제가 어려워 난리인데 기업 경쟁력을 높이려면 어떤 분야에 주력해야 한다고 보세요. "기술이 하도 빠르게 발전하니까 솔직히 나도 어느 쪽으로 가는게 좋은지 잘 모르겠어. 지금은 LG의 가전제품이 일본산보다 우위에 있는 제품이 있는데…. PDP(플라즈마 디스플레이 패널) 모듈은 우리가 일본의 히타치나 도시바 등에 수출을 많이 해. 아무래도 기술 경쟁력은 연구개발(R&D)에서 나온다고 봐야지." -구본무 회장이 '일등 LG'를 밀어붙이면서 그룹 분위기가 달라진 것 같습니다. "회장이 나름대로 잘하고 있는 것 같아. 내가 보기에 구조조정본부장(강유식 LG 부회장을 말함)과도 호흡이 잘 맞는 것 같고. 사실은 회장한테 절대로 1등하지 말라고 했는데…." -무슨 얘기입니까. 1위를 하지 말라면 2등만 하라는 얘긴가요. "(파안대소하며) 절대 1등을 하지 말라고 했지.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이 있잖아. 예전에는 정말 그랬어. 정치적으로 얻어맞기도 하고 반대세력이라든지 노조로부터 얻어맞을 수 있었어." -명예회장님이 이끌던 15년전에도 LG의 골드스타가 가전에서 부동의 1위를 하지 않았나요. "맞아, 그렇지만 그거야 저희끼리(계열사끼리) 싸워서 그렇게 된거지 뭐. 가령 엘리베이터는 같은 계열사인 미쓰비시합작사(나중에 LG가 지분 완전인수)와 LG전자, 두 회사가 죽자살자 싸우더라구. 속내용을 잘 아니까 더 치열하게 싸우는거야. 그래서 최고 품질의 엘리베이터 제품이 나와 기분이 좋았지만 ." -전경련 회장 시절은 어땠나요. "지난 87년부터 2년간 했었는데 노조 파업이 가장 심했던 시절이라 여러가지로 힘들었어. 정치적 상황도 지금보다 나빴던 것 같구." (구 명예회장은 이 시절에 설화로 몇차례 시달렸었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대선에도 나갔었는데 혹시 정치를 하고 싶었던 적은 없었나요. "정치요, 난 욕심이 없어서 그런 생각은 안듭디다." 취재를 마친 기자에게 그는 혼잣말처럼 말했다. "버섯사업에 4,5년간 돈을 쏟아붓다가 요즘은 이익을 내. 우리나라에서 대형 기업화로 돈을 벌 수 있는 농업은 버섯과 양돈 뿐일게야." 바로 그때 그의 셔츠 앞주머니에 들어있던 휴대폰이 울렸다. 역시 LG가 만든 휴대폰이었다. "그래, 별 일 없다니까… " 손님이 있다며 서둘러 전화를 끊는 그에게서 오늘의 한국 경제를 일궈낸 기업영웅과 우리 이웃의 편안한 시골노인 모습을 함께 엿볼 수 있었다. 성환=정구학 기자 c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