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인가 안티 정보화인가.' 기업에서 시작된 정보화가 병원 학교 등 공공성을 띤 곳으로 확산되면서 곳곳에서 노동계와 맞부딪히고 있다. 보건의료노조가 전사적자원관리 프로그램(ERP) 도입에 반대해 쟁의조정신청을 내는가 하면 화물연대는 전자입찰제 확대 중지를 요구하고 있다. 전교조가 폐지를 주장하는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도 행정정보화의 일환이다. 노동계는 정보화가 고용불안을 조장하고 인권 침해 측면이 있어 공공 분야에 도입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인 반면 도입하는 측은 '생존을 위한 선택'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정보화 반대 봇물=전북대병원은 지난 5월 ERP를 전면 도입했다. 의약분업 등의 영향으로 지난해 4억원의 적자를 낸 이 병원은 ERP로 △재무관리 △원가분석 △정보관리 △성과관리 등을 시행,수익성 제고를 꾀하고 있다. 그러나 전북대병원 노조는 산별노조인 전국보건의료노조와 연계,반발하고 있다. 병원측이 원가분석을 통해 의사별,부서별로 경쟁을 유발하고 직원의 신상과 근무태도 등을 데이터화해 '보이지 않는 감시'를 한다는 것이다. 김미애 보건의료노조 정책부장은 "병원이 ERP를 이용,돈벌이에 치중해 환자에 대한 서비스가 악화되고 있다"며 "효율성 측면에선 이의를 달 수 없지만 공공성이 강한 병원이 ERP를 도입한다는 건 문제"라고 주장했다. 전체 27개 대학병원 중 25개가 지난해 적자를 낼 정도로 경영상태가 나빠진 종합병원들이 ERP 도입을 추진하고 있어 노조의 반대도 확산될 조짐이다. 보건의료노조는 ERP 도입 반대 등을 내세우고 오는 16일부터 파업에 돌입할 예정이다. NEIS도 비슷한 상황이다. 김진철 창덕여중 교사(전교조측 전국정보담당교사 대표)는 "NEIS는 교사 학부모 학생의 정보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뿐 아니라 교사의 모든 교육 활동을 컴퓨터에 입력하도록 함으로써 노동통제로 귀결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5월 파업을 벌였던 포항화물연대는 포스코가 시행 중인 전체 운송물량 5%에 대한 전자입찰제도가 중간 운송업체들이 화물연대측에 불합리한 계약을 강요하는 한 요인으로 작용한다며 철폐를 요구했었다. 지난해 수협 가락동 공판장과 강동수산에 부분적으로 도입된 전자경매시스템도 중·도매인의 조직적인 반발 등 우여곡절을 겪은 바 있다. ◆'정보화는 필연적'=하지만 사회 전반의 정보화는 '필연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노부호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정보화시스템은 사회 곳곳에서 경쟁력과 투명성,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며 "그로 인해 발생하는 인권침해 실업 등 부작용은 보완책으로 치유해야지 정보화 자체를 막으려는 건 시대를 역행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보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실업자가 되지 않도록 재교육 시스템을 마련해야 하며 정보화로 인한 '빈익빈 부익부' 등의 폐해를 막을 수 있는 제도적 보완 장치도 갖춰나가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지난 2000년 중·도매인 파업 등 갖은 어려움 끝에 전자경매가 도입된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은 경매사 실수나 중·도매인과의 뒷거래 등이 사라져 거래의 투명성이 높아졌다. 또 농민이나 중·도매인으로부터 납품받는 유통업체 음식점 종사자들도 경매 낙찰가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게 돼 유통마진이 적정화되는 등 가격기능도 효율화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