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모습 그대로였다. 한반도를 붉게 물들였던 2002 한일월드컵 개막 1주년을 맞은 31일 서울 광화문거리는 지난 월드컵 거리응원 모습의 재판이었다. 가족과 연인, 친구들과 함께 거리응원장을 찾은 1만1천명(경찰 추산)의 시민들은 지난 1년간 옷장 속에 넣어두었던 'Be the Reds' 셔츠를 꺼내 입고 응원에 나서광화문 일대는 붉은 물결로 넘실댔다. 시민들은 일본 도쿄에서의 경기 시작 6시간 전부터 태극기가 그려진 막대 응원도구를 들고 동화빌딩과 파이낸스센터 앞을 가득 매워 힘찬 응원전을 펼쳤다. 북을 치며 응원을 주도하던 박진석(17.고2)군은 "좋은 자리를 잡고 분위기를 띄우려 친구들과 함께 오후 1시30분에 이 곳에 도착했다"며 "거대한 붉은 물결을 보니 흥분되고 다시 작년 월드컵 때로 돌아간 기분"이라고 말했다. 오후 7시15분 경기가 시작되자 우리 선수들이 펼쳐내는 경기장 상황 하나하나에탄성과 탄식이 엇갈렸다. 일부 시민들은 페이스페인팅에 태극기와 붉은 두건을 온몸에 두른채 쉴새없이응원전을 펼쳤다. 경찰은 애초 시민들의 도로 진입을 허용치 않았으나 3천명으로 예상했던 응원단이 1만명까지 불어나자 전반전이 끝난뒤 동화빌딩 앞 4개차로를 내주기도 했다. 후반 40분 안정환이 찬 공이 일본 골네트를 가르자 시민들은 모두 일어나 얼싸안으며 "대한민국 이겼다"를 연호했고, 수백발의 축포가 하늘을 수놓았다. 종료 휘슬이 울리면서 종이가루가 하늘에 흩날리는 가운데 이들은 인간기차를만들어 광화문 일대를 내달렸으며 수백명씩 무리지어 "대~한민국 세~계최강"을 외쳐대며 밤 늦게까지 승리에 대한 기쁨을 만끽했다. 감회가 새롭다던 회사원 서상일(45)씨는 "가족과 함께 1년 전의 기분을 느껴보려 거리응원장을 찾았는데 한국이 이겨 더욱 기쁘다"고 말했다. 작년 광화문 거리응원 질서유지를 담당했다던 서울 남부서 소속 한 의경은 "비록 다리가 아프고 힘들지만 붉은악마의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말했다. 이날도 어김없이 태극기를 흔들며 질주하는 '폭주오토바이'가 등장했으며 주말오후인데도 불구하고 버스와 택시는 텅빈채 거리를 내달렸다. 그러나 승리의 함성으로 가득찼던 거리응원장은 순식간에 종이가루와 페트병,맥주캔, 과자봉지 등으로 뒤덮인 쓰레기장으로 변해 월드컵 당시 전세계를 놀라게했던 질서정연한 모습을 찾기 어려워 아쉬움을 남겼다. 교통정리를 하던 한 경찰은 "이제 청소도 안하나"라며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이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구급차 등 소방서 지원차량 5대와 18명의 소방대원이 대기했다. 한편 같은 시각 바로 옆 미대사관 주변에서 열린 한총련 소속 대학생들이 대거참여한 범대위 촛불집회로 인해 경찰이 세종로 이순신 동상 앞부터 교통통제를 실시해 서대문방면 도로는 극심한 정체를 보였다. (서울=연합뉴스) 이상헌 기자 honeyb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