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빠진 초기 대응에, 엉터리 사후 대처." 대구지하철 참사가 지하철공사의 초기대응 부재 등 안전불감증이 빚은 `인재(人災)'로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경찰과 공사측이 `사고현장 보존'이란 기본 원칙조차무시한 채 현장을 훼손하고 치워버리자 비난이 거세게 일고 있다. 따라서 사고를 하루빨리 덮으려고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마저 일고 있다. 이에 희생자 유족과 실종자 가족들이 강력 반발하자 뒤늦게 사고가 난 중앙로역 보존에 나서는 등 사후 대책이 한마디로 엉망이다. 게다가 지하철공사가 사고를 조직적으로 은폐하고 축소한 것으로 경찰조사에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이와 관련, 사망.실종자 가족과 시민단체 등은 현장 보존을 위한 가처분 신청을 내기로 하는 한편 대구시장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파문이 확산하고 있다. ▲희생.실종자 가족 반발 사고현장 훼손과 관련, 희생자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 시민단체 등이 법적 대응에 나서기로 하는 등 강력 반발하고 있다. 실종자 가족 20여명은 24일 중앙로역 사고현장에서 수거한 잔재물을 모아 둔 동구 안심차량기지에서 '현장 수거물 정밀분석작업과 지하철 운행중단'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이들은 "경찰과 지하철공사가 사건을 축소.은폐하려고 서둘러 현장을 정리.청소해 현장에 남아있을 수도 있는 피해자 유류품과 당시 정황이 훼손되거나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또 "청소가 끝난 뒤에도 현장에서 피해자들 것으로 보이는 유류품이 나온 만큼 정밀 검색을 해 남아있을 수도 있는 유류품을 다시 찾아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앞서 실종자 가족과 시민들은 지난 23일 오전 중앙로역에서 희생자의 것으로 보이는 유골과 유류품 20여점을 찾아냈다고 밝힌바 있다. 대구지하철 참사 시민사회단체 대책위원회는 대구시와 지하철공사를 상대로 `사고현장 및 유류물 훼손 금지 가처분 신청'을 대구지법에 낼 계획이다. 이들은 "사고 책임과 원인을 규명하고 실종자를 찾기 위해서는 현장 보존이 가장 중요한데도 시와 공사측이 아무런 조치없이 전동차 2대를 옮기고 물청소를 하는등 현장을 훼손했다"며 "책임자는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당수 시민들도 "사고현장을 제대로 보존하지 않은 것 등을 볼 때 대구시와 지하철공사, 경찰이 정확한 사고원인 규명과 철저한 대책 마련보다는 서둘러 사건을 마무리하려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든다"고 말했다. ▲현장 훼손 등 엉터리 대처 경찰은 사고발생 하루만에 수사의 기본 원칙을 무시한 채 현장 감식을 끝내고이를 지하철공사에 알렸다. 감식을 서둘러 끝낸 것이 사고 현장을 훼손하는 한 원인이 됐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현장 감식을 한 것은 사고가 난 지난 18일 저녁부터 19일 오전까지로 하루도 안된다. 2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난 참사 원인을 철저하게 규명하고 증거를 찾는 것은 물론 인명피해 규모를 파악하기 위해서 현장을 수없이 둘러봐야 할 텐데 어떻게 한 번에 그 것도 이렇게 빨리 끝낼 수 있느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 사체수습을 빨리하기 위해 이날 밤에 1079호와 1080호 전동차를 월배차량기지로 옮겼다. 경찰의 감식이 끝나자 지하철공사도 사고 이틀째인 19일 오후부터 군인 200명과 직원 100명을 현장에 보내 잔재물을 거둬 일반 쓰레기처럼 자루 200∼300개에 담아 안심차량기지로 옮겼다. 더구나 중앙로역 지하1,2층 대합실과 지하 3층 승강장 주변에 물을 뿌리며 대청소를 했다. 따라서 현장에 남아 있을지도 모를 일부 유골과 유류품들이 잔재물과 섞이거나 물에 쓸려 내려갔을 가능성이 커 사체 신원확인 등을 더욱 어렵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관계자는 "지하철 참사 현장을 곧 바로 치우고 복구한 것은 상식밖이다"며 "1080호 전동차안 희생자의 훼손 상태가 심해 유류품으로 신원을 확인해야 하는 상황에서 사고현장 복구와 훼손은 너무 아쉽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지난 22일부터 사고현장에 일반 시민들의 출입을 허용해 피해자 가족을 포함해 수천명이 몰려드는 등 현장 훼손을 방치하는 결과를 저질렀다. 이처럼 현장 훼손에 대한 비판이 거세자 경찰과 사고대책본부는 24일부터 지하 3층 승강장에 대한 시민 출입을 통제하고 2차 현장 발굴작업을 펴고 있으나 뒤늦은조치가 어느정도 성과가 있을 지 의문이다. ▲무선교신 조작.은폐 지하철공사측이 지하철 참사 사고와 관련, 기관사와 종합사령실 운전사령의 무선교신 녹음테이프 녹취록을 조작하는 등 조직적으로 사건 은폐를 기도한 것으로 경찰조사 결과 드러났다. 경찰은 지하철공사가 낸 18일 오전 9시 55분 부터 10시 17분사이 1080호 전동차기관차 최모(39)씨와 종합사령실 운전사령과의 무선교신 녹음 테이프의 녹취록이 허위 기록인 것으로 밝혀냈다. 이는 지난 23일 지하철공사 종합사령팀에 압수수색을 벌여 확보한 기관사와 종합사령의 무선 교신내용 테이프 원본을 분석한 결과 지하철공사가 처음 제출한 녹취록과 다른 내용이 상당수 포함된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확인했다. 경찰은 1080호 기관사 최씨가 사고가 난 뒤 부터 경찰에 출두하기 까지 11시간 동안 지하철공사 관계자 8명을 만나 무선교신 테이프 등 사고 경위를 조작한 것으로 보고 이들에 대해 사건 은폐 및 관련 증거 인멸을 하려 했는지를 집중 조사중이다. 특히 최씨가 3차례에 걸쳐 작성한 경위서와 담당지도관이 작성한 최종 경위보고서에 `마스컨 키'와 관련된 부분이 최씨가 작성한 1.3번째 경위서에는 삭제됐다가 2번째 경위서와 최종보고서에는 포함돼 경위서 조작 가능성에 대해서도 수사를 펴고 있다. 이와 함께 압수한 근무일지와 운행일지도 석연찮은 부분이 곳곳에서 나타남에 따라 윤진태(尹鎭泰.63) 대구지하철공사 사장 등 경영진이나 간부들이 책임 회피를 위해 사건 은폐에 조직적으로 가담했는지 여부도 캐고 있다. (대구=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