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 불이 났어요. 아버지구해 주세요. 문이 안 열려요" 18일 오전 9시 50분 대구지하철 1호선 1079호 전동차(기관사 최정환.33)는 반월당역을 출발, 대구시내 한복판인 중앙로역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전동차의 객차 의자에 앉은 승객은 책장을 넘기거나 눈을 붙이고 있었고 또다른승객들은 저마다의 하루 일과를 구상하며 감상에 젖어 있어 객실내에는 차량 소음을제외하곤 침묵만이 흐르고 있었다. 승객들은 자신의 생사를 가르는 운명의 시간이 시시각각 다가오는 것을 꿈에도생각하지 못했다. 이어 3-4분 뒤 9시 55분께 사건은 벌어지고야 말았다. 전동차가 중앙로역 플랫폼으로 들어서는 순간 2호 객차에서 감색 체육복을 입은김모(56.대구시 서구 내당동)씨가 갑자기 검정 가방에서 시민들이 흔히 먹는 녹색플라스틱 우유통을 꺼내 그 마개에 1회용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김씨 옆에 있던 박금태(37.남구 대명동)씨 등 승객 3-4명은 장난을 하는 것으로보고 "구내에서 위험하니 불을 붙이지 말라"고 했으나 김씨는 이 말을 듣지 않고 계속적으로 `찰칵..찰칵'하며 불을 붙였다. 박씨 등 승객들은 이에 김씨를 덮쳐 격투를 벌였으며 이 와중에 우유통에 가득찬 시너로 추정되는 인화성물질은 김씨 몸과 바닥에 뿌려졌으며 결국에 라이터의 불이 붙었다. 불이 나자 지하철 구내에는 자동으로 전기공급이 끊기면서 암흑천지로 변했으며출입문도 닫혔다. 특히 전동차의 객차에는 스프링클러 시설이 없어 삽시간에 불길은 화학성 섬유시트 등으로 번져 객차에는 유독성 검은 연기가 가득찼으며, 승객들의 고함소리와울음소리가 뒤섞이면서 열차는 아비규환 상태에 빠졌다. 생사의 기로에 선 승객들은 출입문을 열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였으며 노약자등 일부 승객들은 연기에 질식해 하나 둘 쓰러졌으며 문이 열리지 않은 객차의 승객들은 모두 비명횡사하고 말았다. 사고 열차에 탄 이미영(19.경북 왜관읍)양은 갑자기 발생한 화재로 객차를 빠져나오지 못하자 아버지에게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 "구해주세요..문이 안 열려요"라며 구조를 요청했다. 잠시 후 휴대폰에는 비명과 고함 소리, 울음소리가 들리면서 꺼졌으며 이후 이양은 연락이 끊겨 온 가족들이 화재 현장과 대구시내 병원을 돌아다니며 애타게 찾고 있다. 불이 난 뒤 경찰과 소방대원들이 긴급 출동했지만 유독성 연기로 인해 3시간 가까이 현장 진입을 하지 못해 재난은 더욱 커졌으며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부상자 가운데서도 위독한 사람이 많아 사망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화재가 나자 대구 도심은 시커먼 연기로 가득차 전쟁터를 방불할 정도였으며 도심 상가 상인들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대부분 철시를 하고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기도 했다. 화재 소식이 알려지자 현장과 병원에는 가족의 생사 여부를 확인하려는 시민들이 몰렸으며 지하철 운행 중단과 중앙로 등 시내 도로가 통제돼 대구 전역의 교통이마비됐다. 각 직장에서도 일손을 놓고 방송을 통해 중계되는 현장상황을 지켜보며 가족과친지들의 안부를 확인하느라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자신의 신병을 비관해 분신자살을 기도한 김씨의 어이없는 행동이 불러온 대참사에 시민들은 깊은 충격과 슬픔에 빠졌다. (대구=연합뉴스) 문성규.이덕기.이강일기자 moonsk@yonhap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