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다해 수색에 나섰지만 결국 찾지 못했는데 11년이 지난 지금에야 발견돼 마음이 무거울 따름입니다. 유가족과 함께 산을 헤매기도 여러 번이었는데..." 개구리 소년들이 실종된 지난 91년 3월부터 8년 넘게 이 사건의 수사본부와 전담반에서 수사를 맡았던 경찰관 K씨는 실종소년들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이 발견됐다는 소식에 마음이 착잡하다고 전했다. "경찰을 비롯해 실종 어린이 가족, 주민, 군인 및 공무원 등이 나서서 수색을 벌였습니다. 넓은 산이라 막막했지만 꼭 찾아야 한다는 각오로 모두 열심히 돌아다녔습니다만 결국 찾지 못했습니다" K씨에 따르면 당시 1회 출동 가능한 경찰 최대 인력은 400명 남짓했다. 연인원 32만명이 동원돼 저수지 물도 다 빼내는 등 갖은 노력을 했다고들 하지만 넓은 면적에 경찰을 포함해 500∼600명 가량의 인력이 투입돼 효과적으로 수색을 펼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게 K씨의 설명이다. 더구나 유골이 발견된 곳은 산봉우리 너머에 있는 외진 곳이라 상대적으로 수색의 집중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또 다른 수사관 A씨도 "아마도 유골 발견 지역도 수색이 이뤄지긴 했을 것으로 판단된다"며 "그러나 400∼500명이 산밑에서 위쪽으로 훑어 올라갔더라도 서로간 간격이 너무 넓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라고 말해 수색이 치밀하게 이뤄지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었음을 추정케 했다. A씨는 "당시 산 수색 도중에 개구리 소년을 봤다는 제보가 전국 곳곳에서 잇따르는 바람에 초기단계에서 수색이 집중력있게 진행되지 못한 측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두 수사관은 "비록 늦게나마 실종 소년들의 생사가 확인되는 것 같아 그나마 큰 시름을 더는 것 같다"면서도 "일찍 생사 확인을 하지 못한 데 대해 유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금치 못하겠다"며 착잡해 했다. (대구=연합뉴스) 김용민기자 yongmi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