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루사가 동해안을 덮치던 지난달 31일 수마로부터 새끼들을 지켜낸 풍산개가 있어 폐허의 수해현장에서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주인공은 4년전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산골마을인 강릉시 강동면 임곡2리에서 노후를 보내고 있는 주창흘(75).이순덕(57)씨 부부의 유일한 귀농 동반자인 풍산개'백두'.


주씨 부부는 지난달 31일 밤 집에서 한달전 새끼 6마리를 순산한 백두와 함께 끊임없이 쏟아지는 장대비를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집이 개울에서 떨어져 있는데다 지대가 높은 산자락 아래에 위치해 설마했지만 흙탕물은 순식간에 불어나고 있었다.


설마가 두려움으로 변하는 순간 아랫마을에 사는 젊은이가 승용차를 몰고와 피신을 권유했고 주씨 부부는 서둘러 승용차에 올랐다.


백두 가족이 걱정됐지만 비좁은 남의 승용차에 강아지들까지 태우기가 미안했던 주씨 부부는 묶인 백두의 목줄을 풀어주고 사지(死地)를 탈출할 수 밖에 없었다.


백두 걱정에 뜬 눈으로 밤을 보낸 주씨 부부는 다음날 오후 물이 빠지자 집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집 마당으로 들어서는 순간 백두는 꼬리를 흔들며 반갑게 짖어 댔고 새끼 6마리는 개집 지붕 비좁은 널빤지 위에서 서로 몸을 겹친채 따뜻한 햇살을 쬐며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수해복구를 위해 강릉을 찾은 주씨 장남 상용(39)씨는 "백두가 새끼들을 1마리씩 물어 1m 높이의 지붕으로 옮긴 후 자신은 바로 뒤 돌더미 위에서 밤새도록 새끼들을 지켜냈다"며 "비록 동물이지만 백두의 모성애는 사람보다 강했다"고 말했다.


(강릉=연합뉴스) 배연호기자 by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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