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구작업에 여념이 없는 수해지역에 정치인.고위관료들의 방문이 잇따르면서 주민과 공무원들이 손님맞이에 귀한 일손을 빼앗기고 있다. 이에 대해 수해를 당한 주민들은 "백마디 위로의 말이나 전시성 현장방문보다는 복구 인력, 장비 지원 방안과 현실적인 보상규정 마련 등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일들을 해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사상 최악의 물난리로 공무원들과 주민들이 눈코 뜰 새 없던 지난 2일 충북 영동군에는 수해현장을 둘러보기 위해 방문온 중앙과 도의 고위 인사들 때문에 복구지원에 매달려야 할 공무원들이 영접과 업무보고에 시간을 빼앗겨야 했다. 김성호 보건복지부장관이 이날 오후 5시 영동군과 보건소를 찾아 이재민 구호와 방역상황을 보고 받은 뒤 용산면 산저리 수해현장을 둘러봤으며 한나라당 태풍피해진상조사단(단장 강창희) 소속 국회의원 4명과 대전.충남북 지구당 위원장 10여명도 비슷한 시간 황간면을 찾았다. 또 유주열 충북도의회 의장을 비롯한 도의원 21명이 군재해대책상황실과 영동읍 예전리, 황간면 남성리 등 수해현장을 둘러보고 갔으며 이만의 환경부차관도 영동하수종말처리장과 영동정수장 등을 찾았다. 이에 앞서 지난 1일 오후 김동태 농림부장관이 황간면을 방문, 손문주 영동군수의 안내로 침수됐던 정부양곡 보관창고를 둘러보는 등 30여분간 수해 현장을 둘러봤다. 한명숙 여성부장관도 4일 오전 황간면사무소를 찾아 손 군수로부터 피해상황을 보고받고 쌀(20㎏) 240포를 전달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군청이나 면사무소를 찾아 군수와 부군수, 담당 실.과.소장으로부터 수해현황을 보고 받은 뒤 차량으로 수해지역 1-2곳을 둘러보는 등 형식적 방문 일정을 마쳐 수해복구에 지친 공무원과 수재민들의 불만을 샀다. 한 공무원은 "군수와 피해지역 면장들이 외부 손님을 맞느라 하루 종일 아무 일도 못할 정도"라며 "피해상황 파악과 복구계획을 세우기도 바쁜 지역 실정을 감안해 의례적인 방문을 자제해 달라"고 말했다. 또 수해피해가 심한 김천지역에도 장관과 정치인, 고위 공직자 등의 방문이 이어져 비슷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지난 2일에는 전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과 경북도 교육감.도의원들이, 지난 1일 한나라당 서청원 대표 등 8명과 도지사 등이 각각 김천지역을 방문, 수해복구사업 지원에 집중해야할 공무원들이 브리핑자료 준비와 현장 안내 등으로 시간을 빼앗겨야 했다. 경북 도지사와 도교육감, 군.한전.KT관계자 등 13명은 지난 3일 오전 대구지역특급호텔인 인터불고호텔에서 태풍피해대책 간담회를 가지는 바람에 경북도 재해대책본부의 국장과 계장 등 재해상황실 실무책임자들이 상황실 자리를 비워 "재해대책본부가 설치된 경북도청 회의실을 이용하는 게 바람직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이에 비해 지난 4일 오전 9시 강릉시 재난상황실에는 부산에서 왔다고만 밝힌 건장한 30대 남자가 한 달간 예정으로 봉사활동을 하러왔다며 구호품을 싣는 헬기장에서 힘든 봉사를 한 뒤 오후에는 남산초교에서 청소를 하며 하루를 보내 대조를 보였다. 상습수해지역인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에서 다니던 여행사에 휴가를 내고 강릉에 온 정석주(33)씨도 "침수를 많이 당해 수해주민들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안다"며 전국에서 답지하는 구호품을 싣고 나르며 비지땀을 흘렸다. (강릉.김천.영동=연합뉴스) 박순기.박병기.이해용기자 ryu625@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