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먼저 화해와 협력에 나서야지요. 그렇다면 서로에 대해 가장 큰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6.25 전쟁 희생자들부터 그 첫걸음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여기 온 겁니다." 8.15 통일대회가 열리는 서울 워커힐 호텔에서 민화협 윤재철(68) 상임의장은 대회 기간 내내 기쁨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심정으로 손수 휠체어를 끌고 다니며 북녘 손님들과 못다한 정을 나누었다. 휠체어에 의지한 몸이지만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이번 행사를 준비했던 윤의장은 북녘 손님들과 서울에서 손을 맞잡은 감격으로 연일 이어지는 행사에도 힘든 줄 몰랐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 사병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던 윤씨는 휴전을 5개월 앞둔 1953년 2월 경기도 연천 전투에서 포탄에 두 다리를 잃었다. 헬기로 병원에 후송되면서 윤씨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5년에 걸친 병실 생활이 이어졌다. "그때는 내가 이런 몸으로 살아서 뭣하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 심정이야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지요." 동족상잔의 비극도 비극이었지만 당장 낯설게만 느껴지는 두 다리의 의족을 보며 남몰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주저앉을 수만은 없었다. 민족의 비극에 개인의 비극까지 겹친 상이군인들을 위한 사회보장제도가 너무 열악한 현실 앞에서 자신이 직접 나서기로 마음을 굳게 먹고 1960년부터 대한민국상이군경회에서 일을 시작했다. "북에도 저처럼 상이군인이 있을테고 그들의 아픔을 치유하는 길은 곧 통일입니다." 윤씨는 '상이군인 복지운동'이 '통일운동'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상이군경회 회장을 맡으면서 통일 이후 상이군인들의 위상과 처우에 대한 연구도 시작했다. 지난 95년 7월에는 북의 초청을 받아 언론인과 학자들과 함께 방북해 북녘 상이군인들의 모습을 알아보려 했지만 당시 국제사회를 긴장시켰던 북한 핵위기로 무산되고 말았다. 그러나 윤의장의 활동에 대해 같은 군출신 모임의 항의도 적지 않다. 윤의장은 "그들의 주장도 잘못된 주장은 아니다"라며 "남과 북 사이에 신뢰가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불안감이 생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의장은 "하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평화적인 방법으로 통일에 접근해가야 한다"며 "북측도 일사불란한 통일정책 대신 기득권층이 과감히 기득권을 포기하고 민간 교류와 협력을 확대해가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또 일부 과격시위를 선동하는 학생들에 대해서도 "그같은 행동들이 오히려 반통일 세력에게 이용당할 수 있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16일 저녁 워커힐 호텔 무궁화볼룸 환송만찬에서 윤의장은 건배사로 그래도 함께 갈 수 밖에 없는 한 동포을 떠나 보내는 아쉬움을 담아 잔을 들었다. (서울=연합뉴스) 김상희 기자 lilygardener@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