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계의 고질적인 비리 행태가 검찰 수사와 공정거래위원회의 '메스'로 한꺼풀씩 벗겨지고 있다. 메이저 연예기획사들은 연예인들에게 권리는 주지 않고 의무만 강요하는 '노예계약'을 통해 '시장 진입구'부터 손아귀에 넣은 다음 카르텔을 만들어 공연시장까지 마음대로 주물러온 것으로 공정위 조사에서 드러났다. 이들은 불평등 계약과 담합으로 싼 값에 확보한 연예인들을 방송국 PD 등을 금전으로 매수해 '뻥튀기(스타 만들기)'하는 수법으로 막대한 이익을 챙겨온 것으로 검찰 수사에서 밝혀지고 있다. 검찰이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 대주주 이수만씨를 사법처리키로 한 데 이어 공정위도 28일 기획사들의 담합 행위에 1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등 연예 비리에 처음으로 칼을 댔다. ◆ 기획사들의 로비 실태 메이저 기획사가 신인가수 한명을 띄우기 위해 준비하는 비자금은 2억∼3억원인 것으로 검찰 수사에서 윤곽이 잡히고 있다. 기획사들은 관리비 영업추진비 등을 실제보다 튀기는 수법으로 비자금을 만들어 방송 등 요로에 뿌린 것으로 밝혀졌다. 예비스타 P의 음반 녹음작업이 끝날 때쯤 해당 기획사는 방송국 음악프로그램 PD와 국장 등을 상대로 술자리 마련, 골프 접대 등으로 집중 로비한다. '스타 탄생'에 결정적인 프로그램을 맡은 핵심 관계자들에게는 주식시장 등록을 앞둔 연예기획사의 주식과 외국산 자동차 등도 제공된다. 현금은 지상파 TV와 라디오 케이블TV 등 매체별로 전달된다. 검찰 수사 결과 로비 단가가 가장 높은 곳은 영향력이 가장 센 지상파TV. 고위급 PD의 경우 1억∼1억5천만원이 쥐어졌다. 라디오와 케이블TV는 3백만∼5천만원 수준. ◆ '스타' 만들기 상납구조가 완성되면 '스타 띄우기'가 본격화된다. 방송은 P의 노래를 자주 튼다. 방송의 인기가요 순위 상위에 랭크되기 위해 P는 토크쇼를 비롯한 각종 오락프로그램에 헐값에 나가는 성의도 보여야 한다. 최근 권혜진 CBS PD가 고려대 언론대학원에 제출한 석사논문 '가요의 음반 판매량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대한 탐사적 연구'는 방송과 '스타 탄생'의 실증적인 연구로 눈길을 끌었다. 권 PD는 지난해 9월 한 달 음반 판매량이 1천장 이상인 66종의 음반을 대상으로 판매량과의 상관관계를 조사했다. 그 결과 음반 판매량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인은 TV 방송 횟수로, 노래가 TV에 많이 나올수록 판매고가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연예계의 '노예계약' 관행 공정위 조사국 이동훈 조사기획과장은 "기획사에는 권리조항만 있고 연예인에게는 의무조항만 있는 전속계약에 조사의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조사 결과 SM 소속 인기그룹 'H.O.T'는 물론 플라이투더스카이 등 이 회사 소속 가수들은 계약 해지 때 계약금과 투자액 반환은 물론 '잔여 계약기간 예상수익'의 3∼5배에 달하는 배상과 추가 현금 지불까지 규정한 계약서를 사용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유명 연예인이 다수 소속된 도레미미디어 GM기획 디에스피엔터테인먼트 라플엔터테인먼트 등도 소속 연예인들을 동의 없이 타사에 넘기거나 일방적으로 계약 해지를 규정하는 등 법령과 상식에 맞지 않는 계약서를 사용해 오다 시정권고를 받았다. MTM 등 유명 연기학원은 수강생들을 방송에 출연시키면서 기존 연기자에게 징수하는 출연료의 30%보다 높은 50%를 수수료로 받아냈다. 에이스타즈는 모델선발대회를 열어 입상자에게 출연료를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리지도 않은 채 2년간 SK글로벌의 교복모델로 출연시키기도 했다. ◆ 업체.업계 단체의 담합 SM 예당 대영A&V 동아뮤직 등 8대 음반사의 대주주들은 '아이케이팝'이라는 음반판매 회사를 만들어 각사가 10%씩 출자한 뒤 다른 유통망과는 거래를 금지했다. MBC '시사매거진 2580'의 연예 비리 보도에 불만을 품고 소속 연예인의 MBC 출연 거부를 결의했던 한국연예제작자협회의 이른바 '연제협 사태'에 대해서도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시정명령이 내려졌다. 소속사 영화에 출연키로 했다가 계약을 파기한 뒤 협회 소속사가 아닌 타영화사의 영화에 출연했던 영화배우 유오성씨를 소속사 영화에 출연시키지 않기로 결의했던 영화제작자협회에도 같은 결정이 내려졌다. 김태철.박수진 기자 synerg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