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은 인상으로 무게만 잡는다.사무실이 떠나갈 정도로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댄다. 뜻대로 안되면 막무가내 화부터 낸다". 직원들에게 인기 없는 상사의 전형이다. 당연히 이런 상사를 모시는(?) 직원들은 일할 마음이 안 나게 마련. 그저 하루하루가 고난의 연속일 뿐이다. 여기 이런 재미없는 상사의 모습을 과감히 떨쳐버린 한 여성이 있다. LG카드 강남 DM센터장 진미경 과장이 그 주인공. 그는 얼마전 직원들에게 들려주는 목소리를 담은 수필집 "새콤한거 좋아하니?"를 냈다. 하루 종일 사무실에서 잔소리를 내뱉는 대신 그동안 자신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느낀 것들을 마치 옆자리 후배에게 말하듯 진솔하게 글로 담았다. 진 과장이 속한 부서는 DM(direct marketing). 새로운 서비스나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카드 회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구매를 유도하는 일을 한다. 현재 2백여명 남짓한 직원들이 콜센터에서 이 업무를 하고 있다. 직원은 모두 여성. 진 과장은 부서를 책임지고 있는 "왕언니"다. 여직원끼리 있는데다 업무 강도가 세다보니 직원들 다루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점심 시간을 제외하고 하루종일 전화기 앞에 있어야 하는 일이다 보니 직원들의 스트레스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랍니다.신경이 예민해져 있는데 옆에서 한 두 마디 한다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예요.결국 말보단 글로 직원들에게 다가가는 게 쉽겠다 생각했죠." 책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지난 1월. 센터장에 부임한지 만 1년이 됐을 때였다. 그러나 생각처럼 글쓰는 게 쉽지는 않았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책을 써야겠다고 맘은 먹었지만 워낙 카드 업계가 바쁘게 돌아가는 터라 짬을 낼 수가 있어야 말이죠.결국은 점심시간을 "헌납"했어요.퇴근한 뒤 사무실에 혼자 남아 펜을 든 적도 많구요." 책을 만드는 동안 허리병까지 생겼다는 진 과장은 "책에 담긴 내용은 직원들에게 하고픈 말인 동시에 나를 향한 채찍질"이라고 말했다. 경력 13년의 베테랑,슬슬 직장생활에 이골이 날 법도 한 시기에 진 과장은 책을 쓰면서 스스로의 무기력함도 날려버렸다. "한달동안 점심시간을 반납한 댓가로 책이 탄생됐지만 막상 직원들 앞에 책을 내밀기가 쉽지 않았어요.슬쩍 휴게실 구석에 배치해뒀는데 예상외로 직원들의 반응이 좋아서 속으로 많이 놀랐어요." "가슴에 와 닿았다"는 말부터 "동료끼리 동질감을 느끼고 상하관계도 더 편해졌다"는 말까지 사무실에선 좀처럼 듣기 어려웠던 칭찬들이 쏟아졌다. 사내 분위기도 화기애애해질 수 밖에. 다른 계열사로부터 책을 어떻게 구하면 되냐는 연락도 쇄도했다. 덕분에 진 과장은 LG그룹 내 스타가 됐다. 이제 이름도 꽤 알려졌지만 그에겐 여전히 딱 하나 바램밖엔 없다. "유익한 정보를 알려주려고 전화를 하는 건데 고객들 반응이 너무 적대적이어서 속이 상할 때가 많아요.제발 무조건 귀찮게 생각하지 마시고 한번 꼼꼼히 들어보세요. 군데군데 돈이 숨어있다구요.이젠 무작정 끊어버리기 없기예요.알겠죠?" 김미리 기자 mi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