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이 끝나면 무슨 재미로 살아야할지 막막해요" "매일 밤 TV로 한국전 경기와 붉은악마의 응원 물결 등을 보고 또 보면서 밤잠을 못이루고 있어요" 지난달말부터 시작돼 60억 지구촌 사람들의 눈과 귀를 모았던 `2002 한.일 월드컵대회'가 결승전과 3.4위전을 남겨두고 있지만 그동안 붉은 물결을 이뤄 한국팀에 열렬한 응원을 아끼지 않은 시민들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월드컵 후유증'에 빠지면서 답답하고 허탈한 마음을 달래지 못하고 있다. 직장인들은 대표팀이 4강 진출이라는 신화를 이뤘지만 25일 독일전 패배로 승리행진이 멈추면서 그동안 한국을 위한 축제처럼 여겨졌던 월드컵 행진이 종착역에 다다른데 대해 모두들 아쉬워했다. ◆ 일손 안잡혀 서둘러 여름휴가 = 일부 열성 축구팬은 아직도 감동과 흥분이 가시지 않은 '월드컵 열기'를 억누르지 못하고 회사에 출근해도 일손이 잡히지 않아서둘러 여름휴가를 떠나고 있다. 벤처업계 직원 김선주(32)씨는 27일 "한달가량 축구를 즐기고 여러 차례 길거리응원을 하다보니 쉽게 일손이 안잡힌다"며 "차라리 완충시간을 갖는 게 좋을 것같아 내주에 여름휴가를 빨리 갔다올 생각"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이들은 매일 밤 공중파나 유선방송 TV를 통해 지금까지 한국 선수들의 투혼의 모습과 용광로를 연상케 한 붉은 악마들의 응원, 유럽과 남미 강팀의 명장면 등을 `보고 또 보며' 여전히 밤잠을 설쳐 낮시간에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근무시간에 `대∼한민국'과 `오 필승 코리아' 응원 구호의 환청 현상을 겪는 직장인은 물론 한국 선수들이 투혼을 발휘하는 모습 등이 머리속을 떠나질 않아 집중력이 떨어진다고 호소하는 직장인들도 적지 않다. 회사원 김지은(33.여)씨는 "월드컵이 끝나면 도대체 무엇을 해야할 지 고민스럽다"며 "한달간 모든 얘기 화제나 즐거움, 감동의 장이었던 월드컵이 끝나면 더 이상그런 감동과 즐거움을 느낄 수 없어 안타깝다. 아마 이런 정신적 후유증은 한동안갈 것 같다"고 걱정했다. 벤처기업인 인터넷 영화 사이트 씨네웰컴 등 일부 회사는 월드컵 응원열기를 일자리로 되돌릴 수 있도록 자체 단합대회, 회식 일정을 잡거나 극기 훈련대회, 등반대회도 계획하는 등 온 힘을 쏟고 있다. 박기제(33)씨는 "월드컵에 푹 빠졌던 동료들에게 빨리 잊고 이젠 열심히 일하자고 말하지만 오히려 이 열정을 식히지 않고 회사나 부서 차원의 단합대회 등을 통해 업무의 즐거움으로 이어가는 것도 좋을 듯 싶다"고 말했다. ◆ 수업 분위기 조성 안간힘 = 학사 일정을 월드컵 시계에 맞췄던 학교들도 기말고사과 여름방학 등을 앞두고 평상시 수업 분위기 조성에 애써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러나 축구광 학생들은 매일 붉은 티셔츠를 입고 등교하고 점심 및 방과후 시간에는 운동장에 남아 축구하는 아이들로 가득차고, 수업시간에도 월드컵때 보고 들은 각종 축구 이야기를 끄집어 내면서 면학 분위기를 흐리기도 한다는 것. 학교측은 `시간이 약'이라며 곧 제자리를 찾을 것으로 기대하지만 학생들의 월드컵 열기는 좀체 식지않고 있다. 중대부고 최장욱 교사는 "시험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와도 일부 학생은 월드컵소식을 보기 위해 스포츠 신문까지 학교에 갖고와 서로 돌려 볼 정도"라고 전했다. 포이초등학교 직원 정수연(22.여)씨는 "많은 학생들이 아직도 붉은 티셔츠를 입고 등교하고 수업후에는 서로 `대∼한민국'하고 박수치고 헤어지고, 방과 후에는 운동장에 남아 축구하는 아이들로 북적댄다"고 말했다.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는 "이는 축제가 끝난 뒤 여운"이라고 했고, 최주연 정신과 전문의는 "축제 뒤 허전함을 오히려 즐기면서 자신의 일상생활로 빨리 되돌아올 수 있도록 노력해야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서울=연합뉴스) 장영은 김상희기자 lilygardener@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