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발발 52돌을 맞는 최순태 할머니(69·대구시 수성구 황금동)는 지방선거다 월드컵 축구대회다 해서 정신없는 와중에도 50여년 전 전사한 남편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임신 6개월의 몸으로 남편을 떠나 보내야 했던 기억이 가슴에 사무치기 때문이다. 1933년 경북 경산의 한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최 할머니는 18세 되던 지난 50년 이웃의 중매로 경북 경산군 자인면 박영택씨(당시 23세)에게 시집을 갔으나 몇달 안있어 6·25를 맞았고 8월 어느날 남편은 임신 6개월인 아내를 남겨두고 전장으로 향했다. 곧 돌아오겠다던 남편은 이듬해 5월 전사 통지서 한장으로 되돌아왔다. 설상가상으로 아들을 잃은 충격으로 시아버지가 실명해 몸져 눕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대로 주저앉을 수 없었던 최 할머니는 아들을 업고 보따리 장사를 하면서 살 길이 막막해진 시댁 식구들과 아들을 돌보았다. 낮에는 보따리 장수,밤에는 삯바느질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최 할머니는 지난 63년 대구로 이사와 셋방살이를 하며 대한방직공장 현장 공원에서부터 식당일까지 20년이 넘도록 피나는 노력을 하면서 차츰 재산을 모았다. 최 할머니는 지난 89년 전몰군경미망인회 대구 수성구지회장에 임명된 이후 지금까지 회원들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물론 자연보호 활동 등 각종 캠페인을 왕성하게 전개하고 있다. 남편이 남긴 유일한 혈육인 아들(51)을 훌륭한 공무원으로 키워낸 보람으로 산다는 최 할머니는 "남편의 죽음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20대 젊은이의 모습으로 남아있는 남편에 대한 기억을 새삼 떠올렸다. 대구=신경원 기자 shi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