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팬티사이즈 스토리"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첫아이를 출산한 직후여서 임신중 속옷 때문에 고생한 일을 생생하게 옮겼었다. 요즘엔 나온 배를 덮을 수 있도록 윗부분을 주름 처리한 팬티와 폭넓은 브래지어 등 임산부 전용제품이 있지만 그런 게 없던 시절 여성들은 딱했다. 당시 속옷이 개발되지 않는 이유를 물었더니 "누가 본다고?"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 소비 트렌드도 변하는 법.소득 수준이 높아진데다 여성들의 의식이 "될 수 있으면 가리기"에서 "가능한한 보여주기"로 바뀌면서 속옷의 비중은 겉옷 이상으로 커졌다. 인터넷의 속옷판매 사이트만 수십곳에 달할 정도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브래지어.어떻게든 가슴을 예쁘게 보이려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갖가지 브래지어가 쏟아진다. 올여름만 해도 몰드컵의 단점인 찌그러짐 방지를 위해 특수 발포처리된 컵을 사용하고 땀 흡수 효과가 좋은 원단을 썼다는 볼륨포에버(비비안).패드속 공기가 볼륨이 약한 쪽으로 움직인다는 바람의언덕(비너스),유두부분에 하트모양 홈을 만들었다는 포인트프리(좋은사람들),패드에 수분보습제 알로에를 첨가했다는 코스메틱(트라이엄프)브래지어 등 온갖 제품이 나왔다. 그런가하면 어깨가 드러나는 옷을 위해 투명끈 야광끈 구슬끈을 따로 만들었다. 다양해진 건 팬티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꼭끼는 바지나 스커트를 입어도 팬티선이 안보이도록 뒤를 스모선수 팬티처럼 만든 팁형과 엉덩이를 올려주고 배를 눌러준다는 기능성 거들 등 종류를 셀 수 없을 정도다. 식물성 섬유에 키토산을 함유,흡습성이 좋은데다 냄새도 중화시키고 우울증 등 생리증후군도 감소시킨다는 생리용팬티도 등장했다. 밑가슴 둘레와 컵사이즈를 30가지로 세분화한 브랜드도 있고(보통 4~9가지),맞춤속옷 전문매장도 있다. 가격 또한 천차만별이다. 브래지어 팬티 세트에 1만원 미만짜리가 있는가하면 20만~30만원씩 하는 것도 있다. 일반형 팬티보다 팁형이 더 비싼 데서 보듯 속옷은 천이 적고 하늘하늘할수록 비싸다. 브랜드도 셀수 없다. 캘빈클라인 보그 니나리치 바바라 한로 등 수입속옷 종류도 엄청나다. 국내 유명디자이너들도 합세,이신우씨는 CJ39쇼핑과 함께 "피델리아",앙드레김은 LG홈쇼핑과 "엔카르타"를 내놨다. 남자속옷도 달려졌다. 흰색 일색이던 남자 팬티가 알록달록해지더니 모양도 삼각 트렁크 스판사각 등으로 늘어났다. 젊은층은 삼각,중년이상은 트렁크를 주로 입는데 여기에 남자거들 혹은 드로우즈라고 불리는 스판사각이 더해진 셈."엉덩이와 허벅지선을 부드럽게 조여 옷맵시를 살려주고 말려 올라가는 느낌이 없다"는 게 제조회사들의 설명인데 사람에 따라 괜찮다는 반응과 답답하다는 반응이 엇갈린다. 브래지어나 팬티가 예쁘고 다양해지는 건 반가운 일이다. 문제는 란제리의 경우 디자인이나 색상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기능과 품질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봉제선과 레이스가 없어 여름에 많이 사용되는 몰드브라의 경우 개선됐다곤 하지만 여전히 쉽게 찌그러진다. 세탁할 때 조심하고,말릴 때 양쪽을 펴서 널고,보관할 때 거꾸로 겹쳐서 하라지만 그렇게 해도 패드가 한쪽으로 몰리거나 구겨진 뒤 원상회복이 제대로 되지 않아 버리게 되는 수가 잦다. 아랫배를 눌러준다는 기능성속옷의 경우 눌린 아랫배가 몽땅 위쪽으로 올라와 서있을 땐 모르지만 앉으면 민망한 수가 많다. 여학생 런닝의 경우 목부분이 U자여서 교복을 입었을 때 끝자락이 보이는 게 수두룩하고 남자 런닝의 경우 빨면 늘어지는 것도 흔하다. 그럴 듯한 디자인 경쟁도 좋지만 제발 한두번 세탁한 뒤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믿음직한" 브래지어와 팬티 좀 만들어줬으면 싶다.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