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불리 먹기 위해 운동을 하던 시대도 있었다. 그러나 월드컵대회에서 보듯 스포츠가 하나의 거대 산업으로 성장한 지금, 그런 생각을 갖고 그라운드를 누비는 스포츠 선수가 몇이나 될까. 선수가 소속된 팀이나 그들을 지켜보는 관중들조차 이제 스포츠스타를 수백억원의 가치를 지닌 매력적인 상품으로 간주하고 있다. 스포츠 에이전트. 톰 크루즈가 주연한 영화 '제리 맥과이어'를 통해 그들의 존재를 처음 접해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스포츠마케팅업체인 '더스포츠'의 서동규 팀장(33)은 한국의 제리 맥과이어를 꿈꾸는 5년차 스포츠 에이전트다. "스포츠시장 '파이'가 점점 커지고 수요자와 공급자 간 이해 관계가 복잡해지면서 등장한게 스포츠 에이전트입니다. 선수를 대신해 연봉협상을 벌이고 광고계약, 은퇴 후 대비책까지 마련해 주는 전방위적인 해결사 일을 하죠." 좋은 선수를 싼값에 잡고 싶어하는 팀과 좋은 대우에 많은 연봉을 받고 싶어하는 선수들은 계약서를 앞에 놓고 치열한 협상을 벌이게 마련. 이 과정에서 수년 간 선수와의 계약을 담당하는 구단 관계자에 비해 법률적 지식과 협상의 노하우가 적은 선수들은 약자가 될 수밖에 없다. "선수들이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해주는게 에이전트의 첫번째 임무입니다. 지연과 학연이 실낱줄처럼 퍼져 있는 국내 스포츠계에서 선수들이 앞에 나서 해결하기 껄끄러운 일과 고민거리를 처리해 주죠." 스포츠 에이전트와 '돈'은 떼어 놓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다. 서 팀장 자신도 스포츠 에이전트의 가장 중요한 능력을 연봉협상의 기술에서 찾는다. "연봉 협상은 과학입니다. 한 시즌 동안의 선수의 기록과 각종 데이터를 분석해 객관적인 자료를 만들어야만 구단에 어필할 수 있기 때문이죠. 농구 선수의 경우 자유투 성공개수 하나까지 정확히 집계해야 합니다." 각 구단에 '눈엣가시'겠다는 질문에 서 팀장은 "구단과의 밀고 당기는 지루한 협상으로 소모되는 시간이 적어지기 때문에 구단들도 팀전력에 이득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구단들도 에이전트들과의 '공생' 필요성을 서서히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서 팀장은 현재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김병현 선수의 국내 에이전트를 맡고 있다. 이밖에 프로농구 허재 김영만 전희철 강동희 선수 등의 에이전트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대학 졸업후 우연한 기회에 스포츠 마케팅 회사에 입사한 서 팀장은 국내 핸드볼 선수들의 유럽진출을 도우면서 스포츠 에이전트 업무에 매력을 느껴 이 세계에 정착하게 됐다. "스포츠 선수들을 단순한 계약 대상자가 아닌 저의 친형제나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그들에게 우선 신뢰감을 심어주고 그 다음에 스포츠 스타로서의 자부심을 세워주는게 중요합니다." '스포츠 선수들의 권익 전도사'라는 평가를 얻은 것도 머리보다는 가슴으로 그들을 끌어안았기 때문이다. "에이전트는 언제나 선수들 뒤에서 일해야 합니다. 선수들이 스포츠스타로 자리매김하는 건 순전히 그들의 피나는 훈련과 노력 덕분이니까요. 앞에서 끌어주고 길을 터주는 연예인 매니저와의 차이는 바로 그겁니다." 'Show me the money(돈 벌어줘)'를 외치는 수많은 선수들과 함께 서 팀장의 하루도 또 다시 숨쉴틈 없이 흘러간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