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생명의 보고라는 것은 옛말입니다. 이미 세계에서 가장 큰 쓰레기통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를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었습니다." 올해로 8년째 '바다 지킴이'로 활약하고 있는 김갑곤 연안보전네트워크 사무처장(38). 그가 바라보는 바다는 페트병과 비닐봉지, 나무 등 생활 쓰레기와 산업 폐수들로 앓고 있다. 어민들은 '그물을 건지면 절반이 쓰레기'라며 한숨을 쉰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바다 생물들도 하루가 다르게 줄어들고 있다. 해양 생태계는 나날이 황폐화되고 있다. 물론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사람에게 되돌아온다. "강의 상류는 상수원이라는 이유에서, 중류는 도시의 터전이라는 점에서 적극적으로 보호되고 있습니다. 환경운동이 활성화됐다지만 여전히 육상 중심이란 얘기죠. 하지만 육상 쓰레기들은 강을 타고 결국 바다로 모여듭니다." 김 처장은 이런 이유에서 앞으로 환경운동의 초점이 바다로 맞춰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바다로 흘러드는 쓰레기의 70%가 육상에서 발생한 쓰레기인 만큼 육상과의 연계가 필수적이라는 것. 결국 쓰레기 투기가 지구를 멍들게 한다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바다 보호의 전제조건이라는 얘기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버린 쓰레기들이 바다를 흐립니다. 차라리 길거리에 버리면 청소하기라도 쉽지만 한번 바다로 흘러들면 속수무책이죠." 그가 몸 담고 있는 연안보전네트워크는 2000년 6월 전국 30개 연안지역 지역단체가 자발적으로 모여 만든 연합체. 한 지역이 오염되면 해류에 쓸려 전지역이 오염되는 바다의 특성을 감안해 통합 조직을 만든 것. 연안보전네트워크 사무처가 있는 안산에는 '안산YMCA 풀뿌리 환경센터'가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김 처장이 전국 연안의 환경보호를 총괄감독하는 총사령관이라면 안산YMCA 풀뿌리 환경센터의 남윤영 사무국장(33)은 안산지역 바다를 지키는 야전사령관이다. 지난 2년간 연안보전네트워크는 전국 20개 연안지역의 쓰레기 현황을 조사했다. 바다로 흘러드는 쓰레기의 종류와 쓰레기양을 데이터화한 뒤 해양수산부 등 관련 부처에 넘겨줬다. 단순히 '바다 쓰레기를 줄이자'는 구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정책으로 입안될 수 있도록 근거자료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환경운동은 그들의 몫이 아니다. 바다 쓰레기 현황 조사는 일반 시민들이 맡고 있다. 각 지역별 단체들이 주부 모니터 요원을 모집한뒤 이들을 '환경보전 전사'로 육성한다. 모니터요원들은 한달에 한번꼴로 쓰레기 현황을 조사한다. 쓰레기도 직접 수거, 처리한다. 안산지역에는 20여명의 주부 요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모니터링 요원은 수백명에 달한다. "모니터링 요원은 바다오염의 폐해를 피부로 느끼게 돼죠. 그 느낌을 혼자만 간직하는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다시 전달합니다. 몇단계 전달과정을 거쳐 많은 시민들이 "바다를 보존해야 한다."라고 생각하게 되지요"(남 국장) 김 처장과 남 국장이 바다 환경보호에 나서게 된 계기는 비슷하다. '개발이냐 환경보호냐'를 두고 첨예하게 다퉜던 시화호가 바로 안산 인근에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시화호 보호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레 바다와 친해지게 됐다. 지난 92년 YMCA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김 처장은 95년께 시화호 환경오염을 직접 목격하면서 본격적인 '바다 지킴이'로 활동하게 됐다. 남 국장은 97년 YMCA에 들어가면서부터 바다환경 보전 운동에 나서게 됐다. 이전에는 조경회사와 신용협동조합에서 2년6개월 가량 근무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요즘 '해양배출법'을 연내에 입법하기 위해 바삐 뛰고 있다. 해양 폐기물을 줄이기 위해 하천이나 도시지역에서 바다로 흘러드는 폐기물에 대한 처리기준을 마련하자는 것이 해양배출법의 주요 골자다. 연안보전네트워크는 해양배출법을 만드는데 근거가 되는 기초 조사자료를 맡고 있다. 전국적인 서명운동도 계획하고 있다. 두 사람은 환경보호란 결국 '인간을 위한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환경 보호의 궁극적인 이유가 인간에게 더 큰 기쁨을 주기 위한 것이란 생각에서다. 이런 이유로 두 사람은 무조건적인 환경 보호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시화호 방조제가 찻길로만 쓰이는게 반드시 좋은 것일까요. 시민들이 방조제에 걸터앉아 낚시를 한다고 바다 생태계가 파괴되는 건 아닙니다. 사람들이 보다 쉽게 바다를 접하고 즐길 때 바다를 지키는 보람도 더욱 커지겠죠."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