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체의 결함 때문에 화재가 발생했다는 정황적인 증거만으로도 자동차 제조업체가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지금까지는 대체로 제조업체가 상품을 부실하게 만들었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대지 못할 경우 해당 업체에 배상책임을 물릴수 없었다. 서울지법 민사5단독 최광휴 판사는 20일 동부화재가 "주행중 화재가 발생한 차량운전자에게 지급한 보험금을 배상해달라"며 현대자동차를 상대로 낸 구상금 청구소송에서 "현대차는 동부화재에 보험금의 절반인 2백70만원을 지급하라"며 강제조정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제조업체는 제조 당시의 기술 수준과 경제성에 비춰 기대가능한 범위내에서 안전성과 내구성을 갖춘 제품을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다"며 "이를 갖추지 못해 손해가 발생했다면 배상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운전자 A씨는 작년 2월 인천공항고속도로에서 포터 카고 트럭(99년 4월 출고)을 운전하던 중 화재가 발생, 차량이 전소되자 동부화재에 보험금을 청구했다. 동부화재는 보험금을 내준뒤 트랜스미션 언더커버의 하자로 이곳에 괸 오일이 과열된 엔진으로 인해 불이 붙었을 가능성이 크다며 현대차측에 구상금을 청구했으나 받지 못하자 이같은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트럭이 출고된지 얼마 안됐고 트랜스미션 커버의 오일누수로 인해 수차례 애프터서비스를 받은 점 현대차측이 동종 차량을 "리콜"한 뒤 언더커버를 사이드커버로 교체한 점 등 차체에 결함이 있을 수 있다는 다양한 정황적인 증거를 들어 현대차에 배상책임을 물었다. 재판부는 그러나 트럭 운전사가 현대차측의 리콜 통지를 받고도 수개월간 차량을 운행한 점 등을 감안,운전자에게도 절반의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한편 오는 7월부터 제조물책임법(P/L법)이 시행되면 결함에 대한 입증책임이 상당부분 제조업체에 부여되는 만큼 제조업체에 책임을 묻는 유사 소송이 잇달을 전망이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