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근(1914-1965) 화백의 그림이 또다시 '대박'을 터뜨렸다. 하늘이 맑고 푸른 5월의 첫날이었다. 박수근은 정부에 의해 '5월의 문화인물'로 선정돼 묘한 인연을 느끼게 했다. 이번에 화제가 된 작품은 '아기 업은 소녀'다. 크기 38×17cm의 이 그림은 1일 오후 실시된 서울옥션 주최 경매에서 5억500만원에 팔려 국내 근현대 미술품 경매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한국 현대미술품 가격은 박수근이 주도하는 형국이다. 그의 작품은 1990년을 전후해 1억원대에 진입한 이후 신기록 행진을 거듭해왔다. 올해 초만 해도 '앉아 있는여인'이 4억6천만원으로 최고가였으나 3월 말 경매에서 '초가집'이 4억7천500만원에낙찰됐고, 이 기록은 한달여만에 '아기 업은 소녀'에 의해 다시 깨졌다. 햇빛이 강하면 그늘도 짙은 법. 박수근 작품 소장자는 가격의 수직상승에 쾌재를 부르고 있지만 정작 그의 그림이 필요한 당사자는 남모르게 속앓이를 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오는 9월 박수근미술관을 개관할 예정인 강원도 양구군청이다. 양구군은 박 화백의 생가 터인 양구읍 정림리에 21억원의 공사비를 들여 미술관을 건립중이다. 그의 작품과 유품을 모아 한국의 대표적 작가기념관으로 키워보겠다는 것이다. 미술계 유명인사들이 건립위원으로 줄줄이 이름을 걸어놓고 있어 미술관조성의지를 짐작케 한다. 문제는 여기에 박 화백의 유화작품이 과연 몇 점이나 전시될 수 있느냐는 것. 양구군은 뾰족한 대책을 세우지 못한 채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작품 구입예산은 쥐꼬리만한데 작품가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양구군이 확보한 박 화백의 유화작품은 놀랍게도 한 점도 없다. 스케치와 판화 15점과 유품 150여점이 고작이다. 이마저 유족 등의 기증품이 대부분. 재정 형편이 어려운 양구군이 고가의 유화를 자력으로 확보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양구군의 올해 작품구입 예산은 3억원에 불과하다. 전액을 투입해도 박 화백의 유화 한 점을 사들이기가 빠듯한 실정. 이에 따라 양구군은 기증에 내심 기대를 걸고 있으나 수억대를 호가하는 작품을 선뜻 내놓을 소장자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참고로, 박 화백의 유족 역시 유화작품이 없어 기증하기가 어렵다고 토로한다. 박 화백 작품의 신기록 행진이 남기는 그늘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미술시장이 박수근을 비롯해 김환기, 이중섭 등 이른바 '빅3 편중현상'을 보이면서 상대적소외감과 빈곤감으로 미술계의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박수근 작품은 지난 3월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겨울'이 57만달러(한화 약 7억5천만원)에 팔린 뒤 급등세를 보여 일부에서는 조심스레 '거품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수근 중심의 인기작가들이 당분간 시장을 끌어갈 것이라는전망이 우세하다. 이들의 작품은 기본적으로 수량이 적은데다 근래 들어 확실한 시장성을 확보하면서 탄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박수근의 경우 작품이 200여점으로 추산돼 희소가치가 일단 크다. 여기에다 그의 작품은 가난한 삶을 토속적 구상회화로 담아내 한국인의 보편적 정서와 맞닿아있다. 이중섭과 김환기의 작품도 적기는 마찬가지. 환금성이 높은 이들의 작품은 시장에서 사실상 '문화재급' 대우를 받으며 연일 주가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id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