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에 다니는 이준호씨(30). 가지런한 머리에 늘 말쑥한 정장을 입고 다니는 신입사원이지만 채팅사이트 세이클럽에 접속하는 순간 그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진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보라색 머리와 흰색 쫄티 차림. 여기에 빨간색 고글형 선글라스와 큼직한 금목걸이까지 걸쳤다. 영락없는 '젊은 오빠'다. 사이버공간상의 자기 분신인 '아바타(AVATAR)'가 새로운 문화코드로 자리잡고 있다. '또 다른 나'를 통해 현실에서 억눌린 욕망을 분출하려는 신세대적 사고가 확산되고 있어서다. 라이코스코리아에서 일하는 김민봉씨(29)는 이러한 가상세계의 인물을 창조해내는 아바타 디자이너.이 세계에선 '조물주'인 셈이다. "가상공간에 생명을 불어넣는 게 아바타 디자이너의 일입니다. 자신의 현재 모습을 운명으로 받아들였던 사람들에게 '대리만족'의 기쁨을 맛볼 수 있도록 해주는 거죠." 그의 손을 통해 세상의 빛을 본 아바타는 모두 1백여개. 어린 아이에서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과 표정의 캐릭터는 물론 그에 맞는 의상과 각종 액세서리를 디자인하는 것도 모두 그의 몫이다. "제가 디자인한 캐릭터를 네티즌들이 사용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꼭 내 자식을 남에게 입양시킨 기분이 듭니다. 보람을 느끼는 만큼 막중한 책임감도 뒤따르게 되죠." 아바타의 인기는 대단하다. 작년말 삼성경제연구소가 선정한 '2001년도 10대 히트상품'에 아바타가 뽑힐 정도다. 이같은 바람에 편승,포털사이트들마다 아바타 치장에 사용되는 옷과 장신구 등을 유료화해 새로운 수익모델로 활용하고 있다. 콘텐츠 유료화로 아바타 관련 시장 규모도 지난해 2백억원에서 올해는 5백억원에 이를 것으로 업계는 추산하고 있다. "아이디가 '이름'이라면 아바타는 '모습'입니다. 컴퓨터 환경이 기존의 문자 중심에서 그래픽 중심으로 바뀌고 남보다 튀어보이려는 젊은 세대들의 심리가 맞물리면서 아바타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김씨는 졸업 후 캐릭터 디자인 회사에서 일하다 아바타 디자이너로 변신했다. "미키마우스 같은 오프라인의 캐릭터와 아바타간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소비자들의 구매심리를 자극하기보다는 네티즌들이 가슴 깊이 묻어둔 꿈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하는 디자인 기법이 필요합니다." 하나의 새로운 아바타를 선보일때마다 좋고 싫음이 분명한 요즘의 네티즌들로부터 바로바로 격려와 질타를 받기도 한다. "무조건 멋있거나 예쁘다고 해서 모두 네티즌에게 사랑받는 아바타가 되는 건 아닙니다. 단순화되고 과장된 캐릭터의 모습속에서도 그만의 성격이나 취향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아바타를 디자인할 때 그가 연구대상으로 삼는 것은 바로 주위의 사람들이다. 아바타의 가장 좋은 모델은 바로 '사람'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사람마다 각자의 독특한 얼굴표정이나 몸동작을 갖고 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을 뻔히 쳐다보고 있노라면 오해도 많이 받지만 직업병인지 그 버릇이 잘 고쳐지지 않네요."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