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파공작원으로 훈련을 받다가 큰 장애를 입은 퇴역 군인을 국가유공자로 본 법원의 판결은 그동안 쉬쉬해온 북파공작원의 실체를 사법부가 처음으로 공식 확인했다는 데 무엇보다 의미가 있다. 특히 부상과 훈련 사이의 인과관계가 인정돼 북파공작원의 실체 확인과 함께 국가유공자 인정 등 이들의 보상 요구도 수용할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에 이번 판결은 획기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북파공작원들도 이번 판결을 크게 반기는 가운데 유사소송도 봇물을 이룰 전망이다. 이번 소송에서 이긴 김씨는 "당연한 승리"라며 "국가가 시킨 일인 만큼 원래 해줘야 할 일인데도 이리 저리 핑계만 대면서 제대로 대접하지 않은 게 잘못이었다"고 말했다. 정부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지난 53년 한국전 휴전이후 72년 7월 남북공동성명 때까지 북파된 공작원은 모두 7천726명이며, 이가운데 사망자가 300명, 부상자 203명, 북한에서 체포된 사람이 130명, 행방불명자 4천849명, 기타 2천244명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원고가 입대 7개월만에 군복무가 불가능할 정도로 중이염, 감각신경성난청, 후두마비 등이 악화된 것은 과도한 소음 노출이나 성대 혹사, 잠수훈련, 유독가스 노출 등 훈련과정에서 유해요인이 작용했다"고 밝힌데서 당시 이들의 훈련 강도를 짐작케 했다. 따라서 이들을 국가유공자로 지정하고 적법하게 보상하는 것은 늦었지만 당연한 일이라는 반응들이 대체적인 지적이다. 한편 그동안 미묘한 남북관계 등을 고려해 이 문제에 대해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여온 정부도 이번 재판을 통해 비교적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과거 북파공작원을 선발했던 국군정보사령부는 그간 부대 근무사실조차 부정해왔던 자세와 달리 재판과정에서 근무사실 및 훈련과정 등에 대한 사실조회에 응해 사실관계를 인정하는 데 일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도 최근 북파공작원을 국가유공자로 예우하는 관련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법 개정을 주도한 김성호 의원(민주당)은 "과거 법원이 정부가 북파공작원 실체를 인정하지 않고 민간인 신분으로 채용된 점을 들어 국가유공자로 인정하지 않았다가 이번에 공식 인정한 것은 뒤늦었지만 바람직한 일"이라며 "정부가 보상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법 개정에도 불구, 사망자와 부상자, 실종자를 제외하곤 보상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어 이들의 예우 문제를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고 북파공작원 출신 김모씨는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 박세용.박진형 기자 s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