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색깔이 왜 이리 검게 됐는지 모르겠네' 인간의 손에 파괴된 시화호를 되살리기 위해 8년을 하루같이 지킴이 역할을 자처해 온 안산시청 환경보호과 일용직원 최종인씨(48.안산시 본오동). 그는 시화호 최상류 저습지에 하얀 종이를 물속에 담았다 꺼내며 혼잣말을 했다. 최씨는 길목에 세워놓은 지프 트렁크에서 바지 장화를 꺼내 입고 갈대밭을 지나 습지 한어귀로 다가섰다. 그는 긴 자로 습지바닥을 쿡쿡 더듬는다. 사람 키의 두 배가 넘는 깊은 곳도 많아 조심스럽게 다가서지 않으면 웃옷까지 적시기 십상. 적당한 자리를 잡더니 페트병을 꺼내 물을 담아 넣었다. 쌀쌀한 날씨에도 공장 폐수에 뒤섞인 습지 물은 비릿한 냄새를 물씬 풍겼다. 그는 "매일 같이 시화호 주위를 순찰하지만 이처럼 어느 순간 물 상태가 나빠진 걸 놓치는 경우가 적지 않아요. 하루라도 시화호를 안 둘러본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죠"라고 말한다. 최씨는 시화호에 대해서 만큼은 손바닥 들여다 보듯 다 알고 있는 자타가 공인하는 '시화호 지킴이'다. 지난 94년부터 안산 화성지역 공단폐수로 썩어가는 시화호를 살리기 위해 매일 오전 5시부터 일어나 승합차를 몰고 순찰해 왔다. 1997년엔 시화호내 공룡발자국과 공룡알 화성을 발견하고 작년 6월 주변 4백85만평을 천연기념물 414호로 등록시키기도 했다. 안산시청은 그의 공적을 인정, 조수보호감시원으로 위촉했다. 전남 장흥이 고향인 최씨는 물과 인연이 많은 사람이다. 1964년과 65년 호남지역에 몰아친 극심한 가뭄으로 최씨 가족은 농사를 포기하고 생계유지를 위해 서울로 떠났다. 그는 당시 마을 주민들이 마구잡이로 땅에 구멍을 파다 수맥을 잘못 건드려 우물마저 못쓰게되는 바람에 항아리에 빗물을 받아 연명해야 하는 참담한 경험을 일찌기 했다. 이런 어린 시절 물에 대한 안타까운 기억을 간직하고 있던 최씨는 직장을 안산에서 구하면서 시화호를 접하게 됐다. 평소 바다를 접해 보지 못했던 최씨는 시화호에 나가 낚시를 하고 바지락을 캐는 등 아름다운 갯벌의 풍경과 정취에 흠뻑 매료됐다. 하지만 즐거움도 잠시. 정부가 지난 94년부터 식량증산을 위해 농지를 개간한다는 명목아래 시화호 물막이(방조제) 공사에 들어갔다. 시화호는 순식간에 '죽음의 물'로 변했다. 아름다운 바다 생태계가 파괴되고 공장폐수 유입으로 어폐류가 떼죽음을 당하는 전과정을 안타깝게 지켜봐야만 했다. 최씨가 시화호 지킴이로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이맘때. 그는 회사일이 끝나면 집에도 들르지 않고 곧장 시화호로 달려가 쓰레기 무단투기와 야생동물 밀렵을 신고했다. 지난 97년엔 직장생활을 하면서 시화호를 지키기엔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직장을 아예 때려치웠다. 부인 김수희씨(42)는 "직장을 그만 둔 것을 알았을때 시화호가 무엇이길래 가족까지 내팽개치는지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휴일은 물론이고 명절에도 시화호 지키는 일로 부모도 제때 찾아 뵙지 못하는 그를 두고 손가락질하는 주변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부인 김씨도, 주변 친척들도 그의 일에 든든한 후원자들이 됐다. 새벽에 시화호로 가고 나면 최씨를 찾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거의 매일 코스를 바꾼다는 얘기다. "오전 9시 출근해서 저녁 6시면 퇴근하는 일반 공무원들의 규칙적인 업무패턴대로 움직이면 시화호를 더럽히는 무단투기꾼들을 잡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 순찰루트를 정하고 움직이느냐는 질문에 최씨는 '대외비'라며 웃었다. 그는 요즘 서해안 지역과 시화호 인근에 자주 발견되는 노랑부리백로의 생태계를 조사하는데 푹 빠져 있다. 세계적으로 2천5백마리에 불과한 이 희귀조들이 하필 시화 갯벌에 왜 그렇게 많이 서식하는지를 밝혀내는게 갯벌의 생태계적 기능을 파악하는데 결정적인 열쇠가 된다는게 최씨의 지론. 최근 그는 필리핀 태국 싱가포르 방콕 등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18일동안 머물면서 노랑부리백로의 서식지와 생태를 직접 조사하기도 했다. 최씨에겐 갈수록 커지는 걱정거리가 있다. 아직 20대 못지 않은 체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나이가 더 들면 시화호를 지키는데 육체적인 한계가 올 수 밖에 없다는 사실. 환경단체회원들에게 후임을 구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적임자가 나오지 않고 있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일은 좀처럼 하지 않으려는게 요즘 세태인지라..."고 최씨는 말끝을 흐렸다. 임상택 기자 lim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