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초까지만 해도 섣달 그믐날 목욕탕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한해가 가기 전에 묵은 때를 벗기려는 사람들로 가득찼기 때문이다. 72년초 서울시내 대중탕 입장료는 80원.당시 장관 월급은 17만5천원,순경 1호봉은 1만9천2백원이었고,개봉관 입장권은 조조 2백원,일반 2백50원이었다. 목욕비는 97년 2천3백원에서 2천5백원으로 올랐고 지금은 대개 3천5백원선이다. 이용료가 40배이상 오르는 동안 목욕탕 시설도 엄청나게 달라졌다. 동네 대중탕에도 웬만하면 건 습식 사우나시설 및 쑥탕 옥탕 숯탕 등이 설치돼 있고,90년대 후반부터 생겨난 대형목욕탕엔 소금탕 다시마탕 황토탕 게르마늄탕 열탕 노천탕 폭포탕 등 다양한 탕 종류는 물론 식당과 노래방 등 부대시설까지 갖춰져 있다. 단순히 몸을 씻기 위한 곳이라기보다 놀이터 내지 휴식공간으로 변한 셈이다. 경기도 파주 월롱역 옆 금강산게르마늄탕,장흥 인근의 유일레저탕,자유로변의 아쿠아랜드,영종도공항 가는 길목의 해수탕 등 이른바 레저형 목욕탕이 그런 곳들이다. 금강산게르마늄탕은 단면적이 넓고 유일레저는 3층으로 이뤄져 꼭대기 야외탕에 가면 건너편 산정상이 보인다. 아쿠아랜드엔 배를 이용한 카페,해수탕엔 한식당과 양식 레스토랑이 있다. 동네 목욕탕보다 비싼 6천원이고 새벽부터 밤중까지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만큼 수질이 의문스러운데도 휴일이면 인파로 넘쳐난다. 불가마라는 이름의 찜질방 또한 새로운 유형의 목욕문화를 만들어냈다. 원적외선이 몸에 좋다며 뜨겁게 달군 맥반석이나 옥돌 앞에서 땀을 뻘뻘 흘리는 이른바 건식목욕으로 하얀 티셔츠와 반바지등 옷을 입고 있는 만큼 남녀가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찜질방에 관한 최근의 법원 판결문은 흥미롭다. "남녀혼욕 금지 취지는 남녀가 서로 나체를 볼 수 있는 상태로 함께 목욕할 경우 선량한 풍속을 해할 우려가 있다고 보는 것으로,이들 업소가 손님들에게 찜질방 입장시 티셔츠와 반바지를 착용케 하는 점으로 보아 혼욕으로 볼 수 없다" 그러나 시설이나 규모만 크고 화려해졌을 뿐 이용 양태는 바뀌지 않은 것같다. 서로 등을 밀어주던 정겨운 광경과 "빨래 금지"표시가 사라졌을 뿐,아이들은 물론 아줌마들까지 탕 안에서 물장구치고 떠든다. 머리염색을 하는가 하면 일회용 맛사지용품이나 샴푸 린스 봉지는 아무데나 버리고 샤워기 또한 바닥에 팽개쳐놓기 일쑤다. 찜질방에선 아이들이 마구 뛰어다녀도 말리지 않고 통행로에 마구 눕는다. 뿐이랴.업주들의 남녀차별 횡포 또한 그대로다. 여탕손님에겐 수건을 안주는가 하면 심지어 샤워기의 물줄기를 약하게 해놓기까지 한다. 여성들은 수건을 가져가는 데다 물을 많이 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설사 그들의 주장처럼 책임의 일단이 여성들에게 있다고 쳐도 이같은 불공정 관행이 계속되는 건 실로 어이없다. 지금부터라도 대중탕 이용질서 바로 지키기 캠페인과 함께 목욕탕의 남녀차별 철폐운동을 벌여야 하지 않을까. 본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