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접속"에서 동현(한석규)과 수현(전도연)이 만날 때만해도 온라인 커플은 말 그대로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얘기였다.

하지만 지금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사랑을 만드는 각종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현실의 관습조차 이곳에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오늘도 이곳의 연인들은 공간과 나이와 직업을 뛰어넘어 짝을 만나 사랑을 한다.

봄햇살이 따사로운 3월초.선(線)을 통해 만나 사랑을 키운 이색커플 세쌍의 보금자리를 찾았다.


#최고의 女검객과 최고 저격수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 펜싱 금메달리스트와 2000년 포트리스(서로 상대방의 전차에 포격을 가해 맞추는 온라인 게임) 전국 최강자전 우승자가 온라인 길드(게임동호회)에서 만나 사랑에 빠졌다.

결혼 1백일을 갖 지난 이들은 아직도 주말이면 PC방에서 최고의 콤비를 이룬다.

이태희(30.인천중구청 소속 펜싱 플레뢰 선수,이하 여)=아시안게임을 마치고 이듬해 친정팀에 복귀했어요.

여유가 생겨서 컴퓨터를 배웠죠.학원도 다니고 난생 처음 PC방에도 가봤죠.그러다가 친구권유로 "포트리스"에 빠져들었어요.(남편을 쳐다보며)

그리고 이용자들 사이에서 유명한 고수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이광주(33.하나SNC 대리,이하 남)=IMF때 회사가 부도로 쓰러져 졸지에 실업자로 전략했습니다.

빈둥빈둥 집에 있다가 게임에 심취하게 됐어요.

1~2년 되니까 차츰 이름이 알려지더라구요.

여=오빠 실력은 정말 대단했어요.

게임 이용자가 수십만명인데 오빠는 전국대회에서 항상 8강안에 들었어요.

상대팀에 공포의 대상이었어요.

그래서 그 길드에 들어가려는 사람들로 북적였죠.저도 무척 애썼는데 운좋게 들어갔어요(웃음).

남=나중에 태희가 국가대표 펜싱선수라는 걸 알게됐어요.

경기도 몇번 보러 갔는데 재작년에는 국내에서 열린 7개 대회에서 모두 우승했어요.

어찌나 놀랐는지.운동선수라니까 웬지 선입견이 있었는데 모임에서 보니까 의외로 수수하더라구요.

연인으로 발전한 건 대전에서 열린 포트리스 전국 최강자전이었요.

그때 태희도 경기에 참가했습니다.

여=오빠는 대회 참가전부터 계속 주목을 받았어요.

그러다보니 같이 있던 저한테도 사람들의 관심이 쏟아지더라구요.

오빠가 그 대회에서 우승하고 나니까 저까지 괜히 으쓱해지는 거 있죠.대회 끝난 뒤 밤에 불꽃놀이랑 분수쇼를 구경하는데 제손을 슬며시 잡던군요.

남=태희와 본격적으로 사귀기 시작한 뒤 직장을 다시 다니게 됐어요.

작년에 프로포즈해서 결혼했죠.결혼식 반주도 포트리스에서 만난 친구가 해줬어요.

지금은 업무에 쫓겨서 예전처럼 게임에 집중하긴 힘들어요.

그래도 주말엔 같이 게임을 즐기죠.실력은 물론 예전만 못합니다.그래도 3~4개월 노력하면 전성기 실력이 나올 것 같은데...

여=과연 될까?(웃음)

#섬세한 연하남,터프한 연상녀

산악회 활동을 하던 남자가 패러글라이딩 활동을 하던 여자를 만난 것은 90년대 초반,한눈에 반한 남자는 7년간 정성을 쌓아올려 누나를 아내로 만들었다.

예나 지금이나 그녀는 귀엽기만 하다.

조영수(35.대우자동차 과장)=제가 속해있던 산악회가 다른 패러글라이딩 동호회하고 같이 한탄강에 래프팅을 가게됐어요.

처음 봤을 때 인상이 무척 맘에 들었어요.

근데 아내는 전혀 기억못해요.(웃음)

친한 여자 회원을 통해서 살짝 알아봤는데 나이가 저보다 5살이 많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체념할까 했는데 쉽지 않더군요.

그뒤 레저모임을 할때마다 얼굴을 기억시키려고 애썼죠.

박경애(40.보석,악세사리 판매)=처음엔 그다지 큰 관심이 없었어요.

남자회원들이 많아서 구분하기도 힘들었죠.전 그때 개인사업을 했고 남편은 직장인이었어요.

그래서 같이 얘기할 만한 화제를 찾기도 힘들었어요.

가끔 연락하는 후배정도로 6~7년 지내다가 재작년에 스키타러가서 갑자기 친해졌어요.

남=친구가 여자친구랑 같이 가니까 저도 파트너를 데리고 오래요.

고심끝에 같이 가자고 전화했죠.근데 막상 출발할때 친구가 혼자 나타난 거예요.

졸지에 우리만 커플로 간 셈이 됐죠.그때 많은 얘기를 나누게 됐어요.

여=남편은 다른 회원들하고 달리 성격이 좀 섬세해요.

레저 즐기다보면 장비 산다고 선뜻 돈을 쓰는 경우가 많은데 남편은 의외로 많이 아끼는 성격이었어요.

그런 모습이 성실해보였죠.

남=아내는 성격이 털털하고 겁이 없어요.

동호회 남자 후배들 한테도 "임마","녀석" 이런말을 자주 써요.(웃음)

인도네시아로 신혼여행 갔을때 물고기가 이쁘다며 바다 멀리까지 나가는거예요.

전 겁이 나서 나가지도 못했는데.서로 상반된 성격이 매력이었나 봐요.

자기한테 없는것을 가지고 있다는 거 말이에요.

여=이듬해 3월에 결혼했어요.

스키장 갔던게 12월이었으니까 불과 4개월만이죠.갑자기 결혼한다니까 부모님들 반대가 심했어요.

그러니까 더 속전속결로 나갔죠.부모님 설득하며 예식장 잡고.형제,자매들이 옆에서 많이 지원해줬죠.

남=결혼하고 나서도 연상이라고 신경쓰이는 건 없어요.

아내가 웬만큼 동안이어야죠(웃음).지금도 같이 계절별로 레저를 즐겨요.

벌써 이번달이 1주년이네요.

# 강아지 덕 볼 줄이야...

개를 사랑하던 두사람이 서로 사랑에 빠졌다.

애견동호회에서 만난 이들은 지금도 각자 키우던 개 "똘이"와 "이쁜돌이"를 데리고 넷이서 신혼을 이어가고 있다.

안재균(41.풀무원 상무)=전 원래 개를 좋아했어요.

개 키울만한 곳을 찾아서 일산으로 이사갔을 정도니까요.

그곳에서 독일산 미니어처 슈나우저를 키우게됐죠.98년에 인터넷 사이트를 찾다가 슈나우저 동호회에 가입하게 됐어요.

김혜경(28.중앙일보 근무)=아는 친구에게서 슈나우저 새끼 한 마리를 샀죠.

어떻게 키워야 되는지 몰라 애견동호회에 가입했는데 거기서 다시 슈나우저 동호회를 소개받았어요.

남=그때 아내가 일산 근처에 살았거든요.

그래서 정기모임때 제 차로 함께 가기로 했죠.아내가 힌색옷을 입고 나타났는데 첫눈에 반했어요.

천사가 나타난 줄 알았어요.(웃음)

모임에 가서 같이 차에서 내리자 사람들이 "둘이 사귀어요?"고 장난스레 물었는데 아내가 "예"하고 대답하는 거예요.

물론 농담이었지만 무척이나 가슴에 와닿았죠.

여=그 이후에 가끔 만났어요.

처음엔 그냥 친한 회원중 한사람이었죠.공통된 화제가 있으니까 만나도 크게 부담이 안되더라구요.

개 이름이 똘이어서 똘이아빠라고 불렀죠.전 이쁜돌이 누나구요.

본격적으로 친해진 건 재작년 5월쯤이었어요.

그때부터는 매주마다 만났죠.

남=개에 관심이 많아서 데이트 장소도 대부분 개를 데리고 갈 수 있는 곳이었어요.

일산 호수공원이나 포천 산정호수 같은데요.

대화내용도 개에 대한 게 대부분이었죠.개 미용은 어떻게 시키냐,음식은 어떻게 주느냐...

여=혼도 많이 났어요.

제가 개를 보살피는데 게을러서요.

얘기하다보니까 참 편하더라구요.

이런게 인연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그해 11월에 결혼했죠.지금은 남편이 "여봉"이라고 불러요.(웃음)

다른 부부보다 나이차이도 많이 나는 편인데 큰 세대차이는 못느껴요.

남편이 굉장히 활동적이예요.

저보다 더 유행에 민감해요.

요리도 저보다 더 잘해요.

남=지금도 서로 존칭을 쓰고 있어요.

그러다보니 싸울 일이 별로 없는 거 같아요.

주말에는 개 데리고 산책이나 여행을 다니고 있어요.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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