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을 자격이 있는지 모르지만 독일인들이 40년전의 일도 잊지 않고 기억해주는 건 한국에 대한 지대한 관심의 표명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독 경제협력 40년의 최대공로자로 선정돼 독일 정부로부터 5일 '대십자훈장'을 받는 백영훈 한국산업개발연구원(KID) 원장(72). '라인강의 기적'을 '한강의 기적'으로 끌어내는데 큰 역할을 했던 그는 "이번 수훈을 계기로 경제활동의 기본과 원칙에 충실한독일의 질서정신을 한국에 재조명하는 계기로 삼고 싶다"고 밝혔다. 백 원장이 독일과 인연을 맺은건 5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대와 서울대 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54년 우리나라 첫 국비유학생으로 독일(당시 서독)땅을 밟았다. 쾰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58년 귀국해 중앙대 부교수로 임명됐다. 62년 논산훈련소에 입소한 그는 훈련 3개월만에 국가재건최고회의의 소환을 받고 정래혁 당시 상공부장관의 특별보좌관으로 발탁됐다. "미국 정부의 도움을 못받게 된 5·16 군사정부가 독일과 차관협상을 위해 저를 급히 부른 겁니다" 백 원장은 협상을 위해 독일을 드나들며 1억5천만마르크의 차관을 들여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로써 대한민국정부는 1차 5개년 계획사업을 착수할 수 있게 됐다. 백 원장은 1964년 박정희 전 대통령을 수행,독일을 방문해 루프게 독일 대통령과의 회담을 돕기도 했다. "당시 수상이었던 에루하르트는 한국이 고속도로 건설과 자동차산업,정유공장,제철사업을 해보라고 적극 권유했습니다.이같은 정책이 독일 경제부흥의 뿌리가 됐기 때문이지요" 백 원장은 독일과 경제·민간교류에 평생을 바쳐오고 있다. 외환위기 때는 독일 상공회의소를 찾아가 투자를 호소,독일 기업들이 15억달러를 한국에 투자하게 만들었다. 백 원장은 생활이 어려워 40여년간 고국을 한번도 다녀가지 못한 광부와 간호원들을 위해 대한적십자사와 아시아나항공의 협조를 얻어 지난해 70명을 초청했다. 오는 21일에도 1백20명이 고국을 다녀갈 수 있도록 했다. 그는 "한국의 광부나 간호원들은 독일에서 근면하고 우수한 한국사람의 참모습을 보였다"며 "이번에 훈장을 받게 된 것도 다 이 분들 덕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도 독일의 환경기술 도입,2010년 세계엑스포 유치에 대한 독일의 지원,대불공업단지에 독일 기업 유치 등 한·독 경제협력을 위해 바쁘게 보내고 있다. 평생 학자의 길을 걸어온 점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백 원장은 "우리가 사상적 기반을 소홀히 하고 너무 물질중심으로만 살고 있다"며 "선진국에 대한 모방보다 고유문화가 배어 있는 경제모델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특히 "국가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독일인의 질서정신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고 다시한번 강조했다. 글=최규술 기자 kyus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