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설에는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철석같이 믿었건만 또 설을 보내고 한살을 더 먹어 버렸으니 북에 있는 가족들이나 우리나 언제죽을 지 몰라 늙은 인생만 불쌍합니다" 전쟁의 와중 황해도 연백 고향 땅에 부모님과 동생 5명을 뒤로하고 동생 1명과 남으로 내려 온 강일창(72)씨는 올해도 가족들과 헤어진후 쉰한번째 설을 맞았지만 안타깝고 외로운 마음은 지금도 여전하다. 지난해 제4차 남북 이산가족 방문단에 포함돼 혈육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가 그 어느 때보다도 컸지만 상봉이 무산되고 만 터라 이번 설은 그 어느 때보다 허전함이 더했다. 강씨는 명절이면 북의 부모님을 생각하며 합동차례가 열리는 임진각에도 가봤지만 고향가고 싶은 마음은 달래지지 않고 오히려 그리움만 깊어져 올해는 거기도 가지 않을 작정이다. 강씨는 10일 "설이면 어렸을 때 가족들과 함께 떡 먹는게 너무 좋았다"며 "이번 설에도 고향방문은 틀린 것 같으니 함께 월남했던 동생과 만나 서로 위로나 해야겠다"며 고향땅을 향해 눈길을 돌렸다. 공무원이었던 남편 때문에 온가족이 함께 월남한 권지은(89.)할머니도 당시 다섯살이었던 셋째 아들을 북에 놓고 내려 온 것이 설만 되면 못내 가슴을 친다. 이제는 환갑이 넘었을 아들이지만 여전히 자신에게는 5세 꼬마인 권할머니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놈, 업고 오기도 힘들어 다음에 데려오자는 것이 벌써 50년이 넘었다"며 "설만 되면 얼마나 보고 더 싶은지 혼자 놔두고 와서 미안해 미칠 것 같다"고 흐느꼈다. 권할머니네는 명절만 되면 서울 막내딸, 둘째 아들, 부산사는 큰아들 그리고 손자, 손녀, 증손주들까지 모이는 대가족이지만 할머니는 이럴 때일수록 북에 있는 아들 생각이 더 간절하다. 즐거운 명절이라 가족들에게 그런 마음을 내색하지 못하고 속으로 삭여 가슴에 한만 가득 맺혔다. 권할머니는 "작년부터 여러차례 만난다 해놓고 못 만나고 있고 뉴스에는 북한하고 사이가 안좋아지고 있다는 소식만만 계속 나와 지금은 거의 포기 상태"라며 "그래도 죽기전에는 북에 있는 증손자들까지 꼭 만나 세뱃돈을 주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서울=연합뉴스) 여운창 기자 bett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