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BBC방송은 1일 밤 9시(현지시간)부터 50분간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전쟁범죄 행위를 고발하는 프로그램 "전원 사살(KILL'EMALL)"을 통해 지난 50년 7월26일 한국내 미군 최고사령부였던 미8군이 모든 한국 민간인에 대한 정지명령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 방송은 미8군이 "모든 피난민의 전선통과를 불허한다. 모든 한국인의 이동을 즉각 정지한다"는 명령을 내렸고 바로 이날 첫 민간인 학살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방송은 노근리에서 400여명의 피난민이 일부는 다리 위 철길에서, 다른 일부는 미군기의 기총소사를 받고 사망했으며 그후 3일간 철교 밑에서 학살이 계속됐다고말했다. 생존자 양해찬씨는 "다리 밑은 모래와 자갈이었으며 사람들은 맨손으로 숨을 구멍을 팠다. 어떤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의 시체를 바리케이드처럼 쌓아올려 총알받이로 삼고 그뒤에 숨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어떤 아이는 엄마가 죽자 계속 울었는데 이 아이가 우는 곳을 향해 사격이 가해져 다른 사람들이 희생을 당하자 그 아버지가 이 아이를 개울물에 넣어 질식시키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같은 생존자들의 주장은 당시 노근리에서 피난민에게 사격을 가했던 미육군 제7기병연대 참전용사 35명의 증언으로 뒷받침되고 있다고 방송은 말했다. 참전용사 조 잭먼씨는 "한 장교가 미친사람처럼 '모든 것을 향해 발포, 전원사살하라'고 외쳤다. 나는 그들이 군인이었는지 몰랐다. 어린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나이가 8살이든 80세든, 맹인이든 불구자든 미친 사람이든 상관이 없었다. 모두에게 사격했다"고 말했다. 역시 제7기병연대의 참전용사 조지 얼리씨는 노근리 사건 하루 전 중대장이 자신에게 피난민들을 향해 기관총을 발사하라는 명령을 듣고 "민간인들에게 어떻게 사격을 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자 권총을 뽑아 자신의 머리에 겨눈 채 "전투중 명령불복종으로 사살하겠다"고 위협했다고 말했다. AP통신의 보도 후 미 문서보관소에서 피난민 사살명령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문서들이 더많이 발견됐으며 이 문서들은 노근리 사건 이후에도 미국 지휘관들간에 피난민들을 표적으로 삼는 것이 확산됐음을 보여준다고 방송은 말했다. 지난 50년 8월 낙동강을 건너는 피난민에 대한 사살명령이 있었고 같은 달 미제1기병사단(제7기병연대의 상급부대) 사단장 게이 장군은 포병대에 민간인들을 조준하라는 명령을 실제로 내렸다고 방송은 말했다. 또 51년 1월에도 미8군은 한국내 모든 부대에 피난민은 폭격을 포함한 가능한 모든 화력으로 공격하라고 지시했다고 방송은 말했다. 이와 함께 노근리 이외에 새로운 민간인 학살사건들도 밝혀졌다고 방송은 말하고 개전 6주 후인 지난 50년 8월10일 마산 근처 고간리에서 이씨 문중사람 82명이문중사당으로 피신했다가 24시간만에 미 제25보병사단에 의해 전원 피살됐으며 이중 29명이 10세 이하의 어린이였다고 전했다. 또 50년 9월1일 포항 인근의 해안에서는 미 해군함정이 40분간 1천여명의 피난민을 향해 발포, 400여명이 살해됐고 50년 7월과 8월중 수십개의 마을에서 흰옷 입은 사람들에 대한 미군기의 저공 기총소사가 반복됐다는 보고가 있었다고 방송은 말했다. 방송은 한국 국방부는 미군에 의한 민간인 사살사건을 모두 61건 기록하고 있으나 미국은 지난해 이중 1건만을 시인했다고 말했다. 노근리 사건의 제7기병연대와 같이 제1기병사단의 예하부대인 제8기병연대는 사단본부로부터 "모든 피난민의 전선통과를 금지한다. 전선통과를 시도하는 모든 사람에게 발포하라. 여자와 어린이의 경우는 신중히 판단하라"는 명령을 받았다는 문서가 발견됐다고 방송은 말했다. 공군이 육군의 요청으로 민간인에게 기총소사를 가했음을 보여주는 문서들도 발견됐다고 방송은 말했다. 당시 터너 로저스 공군대령은 노근리 사건 전날 작성한 메모에서 "육군은 아군진지에 접근하는 것으로 보이는 피난민 행렬에 기총소사를 요청했다. 지금까지 우리는 육군의 요청에 따랐다"고 밝혔다. 방송은 미 국방부가 노근리 사건당시 사살명령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참전용사들의 상당수가 발포명령을 기억하고 있고 이 명령이 들어있어야 할 제7기병연대의 통신기록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미 국방부 보고서에서는 이 기록에 대한 언급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이 기록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대한 언급도 없다고 방송은 말했다. 노근리사건을 취재했던 AP통신의 찰스 핸리 기자는 "국방부 보고서는 노근리에서 명령이 없었다고 선언했으나 이를 증명할 문서를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BBC는 한국정부가 전쟁중 미군의 민간인 사살사건을 61건이라고 기록하고 있으나 미국 정부는 지난해 이 가운데 1건만을 시인했다고 지적했다. 방송은 이와 함께 노근리 사건 당시 미 육군이 미 공군에 공중 지원사격을 요청했으며 미 공군은 육군의 요청에 따라 기총소사를 실시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이밖에 미군 지휘관들이 피난민들을 적으로 간주해 사격하라는 내용의 기록은 14건의 문서에 나타나 있다고 방송은 말했다. 이날 방송에 출연한 한 참전용사는 당시 자신이 사격할 때 어린 여자아이가 달려가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며 그 아이가 꿈에 나타나 자신의 손을 잡곤 한다고 울먹였다. BBC2의 타임워치 프로그램을 통해 오후 9시부터 9시50분까지 방영된 이 도큐멘터리는 런던의 옥토버필름스가 제작한 것으로 톰 로버츠가 감독하고 제레미 윌리엄스가 프로듀서를 맡았다. (런던=연합뉴스) 김창회특파원 ch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