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과학계의 세계적 석학인 이상문 미국 네브래스카 대학 교수는 우리 기업들에게 '혁명적 혁신'이란 화두를 던졌다. 세계 경제의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에 정보기술(IT)의 과실을 토대로 기업의 생산, 관리, 판매, 네트워크 구축 등 전 과정을 혁신해야 한다는게 그의 주장이다. 세계화의 본질에 대해 명쾌하고 날카로운 해석을 내린 이 교수가 제시한 또다른 과제는 '속도'였다. [ 대담=안현실 한경 전문위원 ] ------------------------------------------------------------------ 일찍부터 'e글로벌 시대'를 말씀해 왔는데 어떤 의미입니까. "우리가 아는 세계화, 즉 글로벌화는 베를린 장벽 붕괴로부터 시작됐다고 보면 됩니다. e글로벌 시대는 그 이후 기술이 혁신의 촉진자로서 역할을 하고 인터넷 확산과 디지털화 등에 의해 지식이 핵심자원으로 등장한 것을 의미합니다. 과거 기업들은 '수직적 통합'을 위해 덩치를 키웠습니다. 예를 들어 포드자동차는 타이어를 만들기 위해 고무나무 농장을 가졌고 차량 제작을 위한 철강회사도 갖고 있었어요. 그런데 요즘엔 그 반대가 됐습니다. '수직적 해체'라고 표현할 수 있는데 내부에서 하는 것보다 외부에서 조달하는게 훨씬 효과적입니다. 총체적 품질관리나 무결점 운동 같은 것은 모두 품질 향상을 위해 사용된 전통적 전략들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품질과 가격경쟁력이 경쟁에서의 승리를 보장해 주지 않습니다.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속도와 고객관리입니다. 결국 e글로벌화 시대의 경쟁요인은 △속도 △고객관리 △품질 △가격 등이 된 것입니다" 경쟁력의 원천도 이전과 달라졌다고 볼 수 있겠네요. "그렇습니다. 과거 경제체제에서 가치는 희귀성에서 나왔습니다. 금이나 다이아몬드처럼 귀한 것이 비싼 값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정 반대입니다. 내가 가진 것을 다른 사람이 공유할 때 부가가치가 나옵니다. 팩스나 핸드폰을 생각해 보세요. 혼자만 갖고 있으면 아무 가치가 없지만 1천만명이 갖고 있다면 이들 제품 없이는 살 수 없게 됩니다. 또 옛날에는 투입(input)된 재료와 산출(output)된 재료의 차이에서 부(富)가 만들어졌지만 이제 재료가 아니라 지식의 차이에서 가치가 나옵니다. 투입된 지식과 산출된 지식의 차이가 얼마나 크냐가 중요한 시대입니다. 정보기술 제품의 경우 약 80%가 지식 비용입니다. 연구개발 비용이 얼마나 들어갔느냐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것이지요" 이런 환경에서 기업들은 어떤 생존 전략을 짜야 할까요. "우선 일본식의 '점진적 향상' 가지고는 안됩니다. '혁명적 혁신'이 필요합니다. 한때 BPR(Business Process Reengineering)가 인기를 끌었는데 이제는 'e엔지니어링'이 필요합니다. 자기 회사만의 독특한 정보 시스템을 써서는 안되고 전세계적으로 똑같은 표준을 가진 인터넷을 활용해햐 합니다. 특히 조직간 혁신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전략적 제휴 등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제 사업의 중심은 '네트워크'입니다. 기업체가 제휴선을 더 많이 가질수록 다른 기업의 핵심 역량을 빌릴 수 있기 때문에 경쟁력이 강해집니다. IT 활용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러나 IT투자를 해도 생산성이 오르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기업들이 많습니다. "저도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여론조사기관인 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생산성은 직원들이 회사일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하느냐에 의해 결정된다고 합니다. 보통 직원의 15% 정도만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것으로 조사됐어요. 만일 참여 인원이 15%에서 20%로 높아진다면 사고가 줄어들고 생산성은 크게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IT와 인적자원을 떼놓고 생각하니까 문제가 나오는 것입니다" 정부가 추진중인 1만개 중소기업 정보화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부가 주도한다는 것은 좀 문제가 있습니다. 이런 일은 중소기업 연합체 등에서 해야지 정부가 간섭할 분야는 아닙니다. 전사적자원관리(ERP) 시스템같은 것이 중소기업에 필요한지 의문입니다. 대기업의 경우 구매 제조 생산 유통 등 절차가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ERP가 필요하지만 거래처 몇 곳에 물건을 납품하는 중소기업에는 큰 의미가 없다고 판단됩니다. 이런 측면에서 향후 ERP보다는 응용소프트웨어임대(ASP)가 부상할 것 같습니다. 저렴한 가격에 소프트웨어를 임대해서 쓸 수 있고 변화에 적응하기도 쉽기 때문입니다" 알바니아 등의 국가 프로젝트를 맡았다고 하는데 어떤 느낌을 받으셨습니까. "알바니아에서 처음으로 MBA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미국 교수를 보내 교육시키고 있습니다. 또 국립대학교에 기업지원센터를 만들어 정부 관료들을 교육시켰습니다. 알바니아는 북한과 유사한 점이 많은 나라라고 생각했습니다. 최근에 김진경 평양 과기대 설립총장을 만났는데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무엇보다 경영대학을 세워달라는 했다는 말을 전해들었어요. 기술만 갖고는 안되고 경영학을 알아야 한다는 인식이 생긴 것이라고 봅니다" 정리=김남국 기자 nkkim@hankyung.com ------------------------------------------------------------------ < 이상문 교수 누구인가 > 이상문 박사는 국제경영,정보시스템 및 전략, 기업 의사결정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학자다. 수십권의 저서가 미국 대학의 경영과학 교재로 활용되고 있다. 그는 특히 기업들의 목표가 한개가 아니고 여러개 존재하는 상황에서 최적화하기 위한 목표계획법을 처음으로 학계에 발표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또 네브래스카 대학을 경영과학분야의 명문대로 키우는 데도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한국통신 이상철 사장이 그의 친동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