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빌린 주택자금으로 남편 명의의 주택을 구입한 뒤 대출금을 갚지 못했더라도 부인이 이를 대신 갚을 의무는 없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서울지법 민사항소5부(재판장 이인복 부장판사)는 8일 서울보증보험이 K생명에서 대출받은 주택자금을 퇴직후에도 갚지 않고 있는 노모씨의 부인 손모씨를 상대로낸 구상금 청구소송에서 원심을 뒤집고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현행 민법에서 `부부중 한명이 일상의 가사에 관해 제3자와 법률행위를 한 때에는 배우자에게 연대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통상의식주에 관한 사항은 `일상의 가사'에 해당되지만 경우에 따라 주택의 구입처럼 일상성이 인정되지 않는 예도 존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 사건은 금융기관이 자사 직원 개인의 신용을 믿고 실시한 대출이고 보증보험 가입시에도 담보 요청 등을 하지 않은 점 등을 감안하면 K생명이나 서울보증보험이 `일상의 가사'에 관한 법률행위를 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배우자에게 연대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또 재판부는 "노씨가 대출자금을 상당부분 개인 빚을 갚거나 도박 등에 사용한것으로 보이는 점도 판결에 감안했다"며 "만일 이 돈으로 부인 명의의 집을 샀다면 판단이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과거의 법률은 기혼여성을 무능력자로 보고 처의 행위를 남편에게 책임을 물었지만 역사적으로 법은 부부를 `한 단위'(공동체성)에서 `두 사람'(타인성)으로 인식하는 과정을 밟아왔다"며 "부부의 재산관계는 이 두가지 성격을 적절히 조화해서 판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보증보험은 노씨가 지난 91년과 94년 당시 재직중이던 K생명에서 주택구입자금 명목으로 총 3천만원을 대출받고 이 과정에서 보증보험에 가입했는데 퇴직후에도 대출금 잔액을 갚지 않자 K생명측에 대신 돈을 물어준 뒤 노씨에게 별다른 재산이 없다며 부인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서울=연합뉴스) 박세용 기자 s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