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연뒤 단 한차례도 흑자를 기록하지 못했던 것은 물론 한때 직원들의 퇴직적립금마저 모두 잠식당했던 곳이 3년 연속 흑자 행진을 구가하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대구의료원. 민간 경영원리를 적극 활용하면서도 의료기관 본연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한 공기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곳이다. 대구의료원의 이같은 극적인 변화는 지난 98년7월 지방공기업 중 최초로 경영자 공채를 통해 선임된 이동구(56)원장이 취임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대구의료원은 계속된 적자로 매년 대구시로부터 7억∼8억원의 보전을 받아야만 겨우 운영되는 신세였다. 행려환자나 저소득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시립병원이라는 이미지로 인해 일반 환자들의 발길은 뜸했다. 직원들의 사기도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대구의료원은 과감한 제도 개선과 혁신적인 경영 기법을 통해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갔다. 가장 먼저 도입한 제도는 계약제와 연봉제였다. 병원의 주축을 이루는 진료과장들부터 정년이 없어지고 경쟁체제에 편입됐다. 진료 실적에 따라 의사들의 수입을 차별화하는 인센티브제도 적용됐다. 민간 기업처럼 팀제를 도입,조직의 탄력성을 높였다. 적자기업에서 탈피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이를 위해 전 분야에서 비용절감 작전을 감행했다. 원장부터 솔선수범했다. 운전기사를 없애고 손수 차를 몰았다. 업무추진비와 각종 수당을 공개하는 등 공공경비와 개인경비를 엄격히 분리했다. 관행적으로 이뤄지던 경비 누수와의 '이별'을 선언한 셈이었다. '투명경영'체제도 도입했다. 3개월마다 전 직원을 대상으로 경영상태를 자세히 알려주었다. 이어 '고객 만족'에 눈을 돌렸다. 병원 운영시스템을 환자 중심체제로 혁신했다. 환자가 쉽게 치료받을 수 있도록 각종 외래 각료과를 본관에 집중 재배치했다. 학생과 직장인들을 위해 야간진료도 시작했다. '친절한 병원' 만들기에도 주력했다. 당장 원장실부터 내원객들에게 개방했다. 환자들의 건의사항도 병원 운영에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부설 한의원까지 만들어 양·한방 협진체제를 이룩했다. 종합건강증진센터 응급실 장례식장 등도 개선해 나갔다. 대대적인 개·보수를 통해 전국의 어떤 병원에 뒤지지 않은 정도로 내부시설을 고급화했다. 이렇게 되자 병원을 찾는 환자가 매년 늘어났다. 그간 말썽도 많았던 장례식장에 대해 외부의 압력을 뿌리치고 직영체제를 도입했다. 병원에서 가장 큰 수익원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이곳에서 나온 수익을 그대로 병원의 재정에 투입했다. 이같은 경영혁신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개혁의 불가피성을 알리고 직원들로부터 공감대를 얻기 위해 이 원장 등 경영진은 24시간 현장에서 뛰었다. 직원들의 불만을 들어주고 각종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몸을 낮추었다. 이같은 경영개선 활동은 경영지표의 향상으로 직결됐다. 지난 97년 78%에 불과했던 병상가동률은 지난해 86%까지 올라갔다. 같은 기간중 진료수입도 1백17억7천만원에서 1백55억8천만원으로 증가했다. 당기순이익은 97년 7억4천5백만원의 적자에서 그 다음해인 98년에 당장 7천8백만원의 흑자로 돌아섰다. 지난해에는 각종 장비와 시설개선에 17억원을 투자했음에도 불구하고 3천8백만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이같은 경영개선의 성과는 공공의료기관으로서 저소득층 장애인 무의탁노인 등을 위한 진료서비스를 확대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무료진료 환자수는 97년 2천6명에서 98년 8천1백98명,지난해 1만4천7백82명으로 매년 큰폭으로 늘어났다. 경영성과의 개선은 직원들에게도 '이익'으로 되돌아왔다. 병원측은 직장새마을금고를 설립,직원들에게 낮은 금리로 자금을 빌려주었다. 금고 수익금으로는 등산 낚시 등 친목 모임의 일부 경비를 지원했다. 직원 자녀를 위한 어린이집도 운영했다. 대구의료원은 이같은 실적을 인정받아 행자부의 공기업 경영평가에서 2년 연속 최우수상을 받았다. 지금도 대구의료원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전국 7개 의료원과 도의회는 물론 일반 병원들까지 견학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대구=신경원 기자 shi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