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비집 주방장으로 일해오던 오모(61)씨는 1998년 10월 세수를 하다가 하반시 마비로 갑자기 쓰러졌다.

진단 결과 과로와 스트레스에 따른 동맥경화가 원인이었다.

오씨는 곧바로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 요양 신청을 냈다.

그러나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같은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오씨는 기나긴 법정 투쟁 끝에 지난 4월 서울고등법원으로부터 산재를 인정받았다.

재판부는 "근로복지공단은 오씨의 동맥경화가 전부터 앓던 당뇨와 흡연 등 다른 원인들에 의해서만 발병했다거나 과로와 스트레스가 발병원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며 "업무상 재해로 보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 판결은 복지공단이 업무와 관계없는 발병원인을 증명하지 못하면 뇌심혈관계 질환을 산업재해로 봐야 한다는 의미에서 주목받았다.

A사의 관리부장이었던 조모(38)씨는 2년전 일을 하다가 두통에 이은 안면마비 증세가 나타난 뒤 현재까지 입원치료를 받고 있다.

고혈압 증세를 무시하고 일정한 출퇴근 시간이 없이 자금조달이나 세무회계를 담당하면서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았기 때문이다.

40대도 되지 않아 발생한 중풍으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포기하는 ''아픔''을 겪고 있다.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한 뇌졸중이나 심근경색증 등 뇌와 심혈관계 질환이 근로자들의 생명을 노리고 있다.

산업재해로 인정받은 뇌심혈관계 질환자도 매년 늘면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여기에다 업무와 뇌심혈관계 질환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명확히 밝히기 어려워 산업재해 인정을 둘러싼 소송이 계속되는 등 사회적인 낭비의 원인이 되고 있다.

◇공포의 대상=IMF 경제위기 이후 구조조정에 따라 직장인들의 업무강도가 높아지면서 뇌심혈관계 질환으로 인한 사망자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고전적인 직업병과 작업관련성 질환을 합한 업무상 질병으로 숨진 근로자는 9백55명.

사망자의 56.9%인 5백44명이 뇌심혈관계 질환 때문이었다.

99년에는 업무상 질병 사망자 8백35명중 50.3%인 4백20명이 뇌심혈관계 질환으로 생을 마감했다.

사망자와 입원요양자를 합친 전체 뇌심혈관계 질환자도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 98년 6백72명이었던 산재인정 환자는 99년 80.6% 증가한 1천2백14명,지난해에는 1천6백66명에 달했다.

올해에는 2천명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예방이 최선=뇌심혈관계 질환은 관리만 잘하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

그러나 시간에 쫓겨 낮시간에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기 어려운 근무환경이 병을 키우고 있다.

회사에서 알 경우 불이익을 우려해 정기건강검진 직전에 고혈압 약을 복용하는 근로자까지 있을 정도다.

박정선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산업보건위생연구실장은 "스트레스성 직업병은 업무강도가 증가하면서 크게 늘어날 것으로 우려된다"며 "사업주와 근로자가 뇌심혈관계 질환의 심각성을 깨닫고 예방을 위한 작업환경을 만들어가면 발병률을 크게 낮출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도경 기자 infof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