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는 전남 장성지역에서 의병장으로 활약한 성재 기삼연(기삼연.1851~1908)선생을 광복회,독립기념관 등 유관기관 공동으로 "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성재 선생은 명성황후 시해 사건 이후 전국에서 의병이 봉기하자 1896년 3월"토적복수"를 내걸고 장성에서 의거해 광주의 기우만.고광순과 합세,의병항쟁의 기세를 크게 떨쳤으나 기우만의 의병부대 해산을 반대하다 관군에게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정미7조약의 체결 등으로 국운이 크게 기울자 그는 1907년 음력 9월 호남지역의병부대를 규합해 "호남창의회맹소"를 설립했다.

선생은 또 1907년 10월 고창 문수산전투,12월 영광 법성포전투 등을 전개해 큰 전과를 세웠다.

이후 그는 장성 담양 나주 함평 광주 등지에서 항일의병 투쟁을 계속하다 1908년 담양 금성에서 일본군의 기습을 받고 대패해 친척집에 은신하던 중 일본군에 체포됐다.

광주로 호송된 그는 1908년 2월3일 "군사를 내어 이기지 못하고 몸이 먼저 죽으니 해를 삼킨 전년의 꿈도 또한 허망하도다"라는 유언을 남기고 광주 서천교 백사장에서 58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한편 독립기념관과 서대문 독립공원에서는 선생의 뜻과 공훈을 기리기 위해 별도의 전시실을 마련,1월 한달간 전시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