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는 장면을 상세히 기록한 고문서 ''임오일기(壬午日記)''가 발견됐다.

국사편찬위원회 고중세실 이상태 실장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장서각에서 임오일기 원본을 확인,이중 첫번째 글인 ''이광현일기(李光鉉日記)''가 사도세자의 죽음과 직접 관련있다고 밝혔다.

이광현은 당시 승정원 주서(注書)였던 인물.

이광현 일기는 그가 주서에 임명된 1762년 윤5월11일부터 사도세자가 죽던 윤5월21일까지 11일간의 기록을 담고 있다.

이광현은 세자가 뒤주에 갇히던 윤5월 13일 사건을 시시각각으로 자세히 보고한다.

진시(辰時·오전 7∼9시)에 영조는 창덕궁 휘녕전 뜰에 널판지를 펴게 한다.

사도세자를 그 위에 엎드리게 한뒤 칼을 빼들고 "네가 지금 자결하면 조선 세자의 이름은 잃지 않을 것이니 속히 자결하라"고 말한다.

사도세자는 "부자관계는 하늘이 정해준 변치 않는 것인데 어찌 아버지 앞에서 흉한 꼴을 보이겠느냐"며 궁밖에서 자결하겠다고 맞선다.

승강이는 신시(申時·오후 3∼5시)까지 8시간 가까이 진행된다.

사도세자는 한차례 허리띠를 풀어 목을 매려 한다.

영조는 자신을 만류하는 신하들을 줄줄이 파직한다.

사서(司書·6품)인 임성은 "세자가 비록 덕을 잃은 점이 있다 해도 인자한 전하께서 새로운 길을 가도록 해달라"고 간청한다.

반면 세자의 장인인 좌의정 홍봉한은 "임금의 분부가 엄하여 나도 어쩔수 없다"고 말한다.

영조는 사도세자를 문책하면서 군대를 동원,주변을 에워쌌다.

재야사학자 이덕일씨는 이를 사도세자의 쿠데타설에 대한 증거로 보았다.

기존의 조선왕조실록이 소략한 점과 한중록이 홍씨일가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었던 만큼 이번 자료가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윤승아 기자 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