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는 일제의 회유를 거부하고 경술국치에 항거,단식하다 순국한 장태수(張泰秀·1841∼1910)선생을 광복회 등 유관기관과 공동으로 1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전북 김제군에서 태어난 선생은 1861년 과거에 급제해 외교문서를 작성,보관하는 승문원 권지부정자,사간원 정언 등을 거쳐 1867년 양산군수에 임명됐다.

1894년 동학농민전쟁이 일어나자 고산현감으로 민심을 안정시키는 데 주력했고 이듬해인 1895년 일제가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친일내각이 들어서자 관직을 버리고 낙향했다.

1904년 러·일전쟁이후 일제의 식민지 정책이 노골화되던 때 다시 관직에 나선 선생은 시종원 부경으로 광무황제를 측근에서 모시다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개와 말까지도 주인의 은덕을 생각하는 데 역적 신하들은 어찌 임금을 속이고 나라를 팔 수 있는가"라며 통곡하면서 관직을 버린 채 낙향했다.

선생은 일제가 회유책으로 전한 은사금을 거부하며 "나라가 망하고 임금이 없는 데도 적을 토벌해 원수를 갚지 못하고 이름이 적의 호적에 오르게 되는 데도 몸을 깨끗하게 하지 못하고 선조를 욕되게 하는 죄를 지었다"며 24일간 식음을 전폐하다 그해 11월27일 세상을 떠났다.

정부는 1962년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